균형 잡힌 부채 관리

부채는 곧 빚이다. 이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일정 시점에 상환을 약속하고 타인의 자금을 빌려 쓰는 행위로 정의된다. 투자와 달리 상환의무가 존재하고 그 사이 발생하는 이자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적정 규모의 부채는 성장의 촉매제가 될 수 있지만, 이를 초과하는 순간 부채는 경제의 뇌관으로 작동한다. 최근 세계 각국과 한국 사회에서 드러나는 부채 확대 양상은 바로 이러한 경계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를 보여준다.

글로벌 차원의 부채 확대와 그 파급력

세계 최대 기축통화국인 미국조차 부채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미국의 재정적자는 GDP의 7.3%에 달하고, 연방정부의 총부채는 36조9천억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치다. 특히 금리 수준이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이자 지출만 연간 9천500억달러에 달한다. 단순한 숫자를 넘어, 이는 미국 경제와 글로벌 금융 시장 모두에 심대한 부담을 준다. 신용등급 강등 사례나 금리 인하 압박 발언은 모두 부채 압력의 실체를 드러내는 신호다.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의 부채비율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일본은 GDP 대비 134.6%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순부채비율을 기록했고, 이탈리아는 125.1%, 프랑스는 105.0%에 이른다. 미국과 영국도 각각 96.5%, 93.7%로 역대 최고치에 근접했다. 이처럼 전 세계 주요 경제권이 모두 재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 부진과 세수 감소는 부채 부담을 가중시킨다. 자금 조달 비용 상승과 정책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위기 확산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내재화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부채 구조와 위험 요인

한국의 경우 국가부채뿐 아니라 가계부채가 구조적 문제로 대두된다. 정부는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재정 동원을 선택했으나 그 결과 적자성 채무는 900조원을 넘어섰다. 향후 4년간 440조원가량이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채무관리계획에 따르면 2029년까지 채무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민간 가계부채다. 주택담보대출을 통한 영끌 매수와 투자 목적의 빚투가 겹치면서 가계신용은 2천조원에 육박했다. 2025년 6월 말 기준 가계신용은 1천952조8천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소득 증가율이 정체된 가운데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자 소비 여력은 급격히 줄고, 이는 경기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가계와 국가 모두 부채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는 충격이 닥칠 경우 파급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부동산 시장은 부채 의존도가 높아 금리 변동과 대출 한도 규제가 사회 전반의 관심사가 되었다. 주택 구매와 자산 증식의 열망이 부채로 지탱되면서 시장 안정성이 취약해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자산 가치가 유지되더라도 장기적으론 금융시장의 위험 요인으로 전환될 수 있다.

부채가 초래하는 구조적 악순환

부채의 문제는 단순히 숫자가 많다는 데 있지 않다. 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시장 신뢰를 잃고 이는 곧 금리 상승으로 연결된다. 금리 상승은 이자 비용을 폭증시켜 다시 부채를 불리는 악순환을 낳는다. 작은 충격에도 경제 전체가 흔들리기 쉬운 취약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위기 국면에서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하는 순간 재정 여력이 고갈되면 대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가가 올랐어도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상황은 금융정책의 무력화를 의미한다.

한국 역시 이러한 위험을 안고 있다. 성장률 목표를 달성하거나 인공지능 산업 육성 같은 국가적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재정 투입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채 위험을 망각한다면 경제 전반의 회복 탄력성은 빠르게 약화될 것이다. 위기 대응 수단을 스스로 제한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부채 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결론: 지속가능성을 위한 균형 잡힌 부채 관리

부채는 본래 성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적정 수준을 넘어선 부채는 국가 경제와 개인의 삶을 동시에 옥죄는 덫으로 전락한다. 지금의 세계는 미국과 유럽 주요국 한국 모두가 부채 확대의 압박 속에 놓여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 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안정성과 사회적 신뢰 전체를 흔드는 요인이다. 특히 한국은 가계와 정부 모두에서 부채 리스크가 중첩돼 있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과제는 단순히 부채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부채를 활용하되 지속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억제하며 성장 잠재력을 확실히 키울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위기 대응 여력을 스스로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부채 관리의 핵심이다. 부채를 통해 얻은 성과가 단기적 이익에 머물지 않고 장기적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혜와 국민적 합의가 절실하다. 결국 부채의 위험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균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오늘날 경제 공동체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