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빈곤과 고용 현실, 지속 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 주변을 지나가다 보면 전단을 나눠주는 노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이 쥐여 주는 종이 한 장은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노후의 생계를 지탱하기 위한 고단한 노동의 증거다. 몇 시간 동안 서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일은 젊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데, 은퇴 연령을 훌쩍 넘긴 이들이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고령층이 늘어나는 가운데, 한국은 ‘노인 고용률 1위’라는 달갑지 않은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이 수치는 경제 활력의 증거가 아니라, 연금과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반영한다.
1. 높은 고용률의 그늘
국회예산정책처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37.3%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일본조차 25.3% 수준에 그쳤음을 감안하면 이는 이례적인 수치다. 언뜻 보면 고령층이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긍정적 지표 같지만, 실제로는 불가피하게 노동시장에 재진입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 제도가 제공하는 소득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평균 연금소득은 월 80만 원에 불과하며, 2024년 1인 가구 최저 생계비인 134만 원에도 크게 못 미친다. 결국 많은 노인들이 노후를 즐기기는커녕 생계를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 일자리의 질은 열악하다. 65세 이상 임금근로자의 61.2%는 비정규직이며, 절반 가까이가 직원 수 10명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한다. 직종을 살펴보면 단순노무직 비중이 36.4%로 가장 높다. 이는 경력과 무관하게 노년층이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임금도 급격히 낮아진다. 정년 직전 50대 후반 근로자가 평균 350만 원을 받던 것과 달리, 60대 초반 재취업자의 평균 임금은 278만 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는 노년 노동이 단순한 소득 보전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재취업 과정에서 기존 경력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사에 따르면 60대 재취업자의 53.2%가 과거 직무와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평생 쌓아온 전문성과 경험이 사라지고, 단순 노동으로 전환되면서 소득은 줄고 만족감도 떨어진다. 이로 인해 노년층은 ‘노동을 통한 자기실현’이 아닌 ‘생존을 위한 막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2. OECD 최고 수준의 빈곤율
노인 고용률은 높지만 노인 빈곤율 역시 OECD 최상위권이라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23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8.2%로, OECD 평균의 두 배를 웃돈다. 이는 노인 10명 중 4명이 빈곤 상태라는 의미다. 전후 세대를 거쳐 한국 경제 발전에 헌신했던 이들이 정작 노년에 생존조차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려 있다는 점은 사회적 아이러니다. 단순히 소득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을 위협하는 구조적 빈곤이다. 정부는 기초연금 확대, 복지 서비스 개선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왔으나 현장의 체감도는 낮다. 무료 급식소에 긴 줄이 늘어서는 현실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단편적인 현금 지원만으로는 구조적 빈곤을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금 제도의 낮은 보장성, 사회안전망의 취약성, 불안정한 노동시장 구조가 겹치면서 빈곤은 되레 세습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빠른 고령화 속도는 문제를 더 심화시킨다. 2030년대 중반이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노년층에 해당하게 되는데, 현행 제도로는 그들을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없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복지 지출은 폭발적으로 늘고, 청년 세대의 부담은 커지게 된다. 이는 다시 세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노인 빈곤은 현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세대 전체의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빈곤이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적 고립, 건강 악화, 삶의 만족도 저하는 빈곤과 밀접히 연결된다. 경제적 어려움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빈곤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이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는 고령화와 함께 ‘집단적 빈곤화’라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3. 세대 갈등을 넘어 협력으로
노인 고용 문제를 둘러싸고 종종 ‘노인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논리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주장이다. 연구에 따르면 세대 간 일자리는 일대일로 대체되는 구조가 아니다. 산업의 특성, 지역의 상황, 직종의 성격에 따라 세대 간 고용은 상호 보완적일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산업에서는 노인 고용이 청년 고용 창출을 촉진하는 효과도 나타난다.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접근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중요한 것은 협력의 관점을 세우는 것이다. 노년층의 경험과 지혜는 사회적 자산이다. 이를 청년 세대와 나누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일자리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장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퇴한 전문가들이 청년 스타트업을 멘토링하거나, 지역사회에서 세대 융합형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은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고령층의 노동 참여를 단순히 소득 보전이 아닌 ‘사회적 참여’의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고령층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이는 청년 세대에도 긍정적 메시지를 준다. 오늘의 청년은 내일의 노인이다. 노년의 삶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미래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구축하는 일과 같다. 더불어 고령층을 단순히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고령층의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이 청년 고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확대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고령층의 노동은 단순히 개인의 생계 수단을 넘어, 세대 간 소통과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결론: 존엄한 노년은 모두의 미래
노인 빈곤 문제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청년 또한 시간이 흐르면 노년이 된다. 오늘의 노인 빈곤은 곧 내일의 청년 현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노인 문제는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의제다. 단편적인 현금 지원을 넘어 구조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첫째, 연금 제도의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높이고, 기초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둘째, 안정적이고 질 좋은 노인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노동 중심이 아닌 경험과 역량을 살릴 수 있는 맞춤형 일자리가 필요하다. 셋째, 세대 간 협력을 제도화해야 한다. 멘토링, 협력형 일자리, 세대 통합 프로그램 등을 통해 세대 간 신뢰와 연대를 강화할 수 있다. 행복한 노년은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이며, 현재와 미래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다. 노인의 존엄을 지키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노년이 안정되고 존중받을 때, 청년 세대도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대 간 책임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엄한 노년을 설계하는 용기와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