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안보학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물 전쟁의 시대

우리 몸의 70%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가 생명체가 존재하는 유일한 행성으로 확인된 것도 물 덕분이다. 인류는 외계 생명체 가능성을 탐사할 때도 먼저 물의 흔적부터 찾는다. 물 없이는 생명도 없다. 그래서 고대부터 치수는 국가 존망의 조건이었고, 농업과 공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은 물의 공급 여부에 달려왔다. 그러나 지구의 물 대부분은 바닷물이고, 인류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양은 지구 전체의 0.007%에 불과하다. 인구 증가와 산업화가 겹치면서 만성적인 물 부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한반도의 물 안보 취약성과 대응

물 전쟁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반도 역시 물 안보에서 자유롭지 않다. 북한은 1980년대 금강산댐을 건설했는데, 남한에서는 이 댐이 붕괴하거나 의도적으로 수공에 사용될 경우 수도권이 직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평화의 댐을 건설해 대비했다. 당시 정치적 논란이 있었으나, 후속 연구에서 금강산댐 붕괴 시 수도권 위험이 확인되자 결국 저수 용량을 대폭 늘려 안보적 효용성을 확보했다.

한국은 강수량이 계절에 따라 극심하게 변하는 나라다. 강물 수량 변동을 나타내는 하상계수가 평균 300으로, 선진국 주요 강의 10배에 가깝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강바닥이 드러나고, 장마철에는 홍수가 반복됐다. 한강의 경우 하상계수가 390에 달했지만, 여러 댐과 보를 통해 90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그 결과 서울의 반복된 홍수 피해는 줄었고, 가뭄에도 일정한 수량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섬진강 등 일부 하천은 여전히 조절 능력이 부족해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

국제 갈등의 뇌관으로 떠오른 물 전쟁

지구 표면의 71%가 물이지만, 인간이 활용 가능한 담수는 극히 적다. 그마저도 국가 간 공유가 필요해지면서 물은 이제 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인도, 파키스탄이 댐 건설과 수자원 배분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인도와 파키스탄은 인더스강 조약을 둘러싸고 무력 충돌 직전까지 치닫는 상황이다. 파키스탄은 생존을 좌우하는 강물을 지키려 하고, 인도는 안보와 발전을 이유로 조약 파기를 거론한다. 양국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상황은 더욱 위험하다.

중국 역시 티베트 고원을 장악한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아시아 주요 강줄기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브라마푸트라강 상류에 초대형 댐을 건설하는 중국은 인도를 압박할 수 있고, 메콩강 상류 댐으로 베트남과 태국, 라오스 등 하류 국가들에 매년 가뭄 피해를 안기고 있다. 이는 물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전쟁의 전형으로 지적된다. 물은 이제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 무기가 됐다.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한 국제 협력의 필요성

물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자원이다. 국경을 넘어 흐르는 강이 많기 때문에 수자원 관리에는 국제 협력이 필수다. 그러나 현실은 협력보다 경쟁이 앞서고 있다. 자원 민족주의와 기후위기가 겹치면서 각국은 물을 무기화하거나 전략적 자산으로 이용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힘이 약한 하류 국가들이다. 기후위기 시대, 물 전쟁은 기존의 영토 분쟁보다 훨씬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물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다자 협약과 분쟁 조정 기구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해 빗물 재활용, 해수 담수화, 지하수 관리 등 다양한 대체 수자원 확보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단순히 갈등을 피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 생존을 위한 글로벌 차원의 공동 대응이 요구된다.

결론 물을 지키는 것이 미래를 지키는 길

인류는 지금 물이라는 자원을 두고 새로운 전쟁의 시대에 들어섰다. 단순한 자원 갈등을 넘어 물은 생존과 직결되는 안보 현안으로 떠올랐다. 특히 아시아는 인구 밀집과 핵 보유국 간 갈등이 겹치면서 세계 평화의 최대 뇌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하천의 변동성과 북한 변수로 인해 물 안보에 취약하다. 이제 물은 단순한 치수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생존과 국제 평화를 좌우하는 전략 자원이다. 인류가 물을 둘러싼 갈등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21세기 전쟁의 불씨는 불가피하게 물에서 시작될 것이다. 물을 지키는 것은 곧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