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치매노인 구하는 한 통의 문자
도심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치매 노인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중 약 10%가 치매를 겪고 있으며, 그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치매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외출 중 길을 잃거나 집을 찾지 못해 실종 신고로 이어진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단순한 실종 사건을 넘어선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고 있다. 바로 ‘지문 사전 등록제’와 ‘배회 감지 문자 서비스’ 같은 제도 덕분이다. 휴대전화로 도착하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때로는 생명을 구하고, 가족의 눈물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는 치매 사회로 향해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늘어나는 치매 환자와 실종 문제
치매는 기억력과 판단력을 서서히 잃어버리게 만드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에서는 환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치매 환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단순한 질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매 환자의 상당수는 ‘배회 증상’을 보인다. 익숙한 공간을 잊고 낯선 길로 들어서거나, 갑자기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경찰청에 접수되는 치매 노인 실종 신고는 연간 1만 건을 웃돈다. 이는 하루 평균 30명이 사라지는 셈이다. 발견까지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도는 커진다. 노인은 체력이 약해 장시간 노숙하면 탈수나 저체온증으로 이어지기 쉽고, 도로에서 사고를 당할 위험도 크다. 실제로 실종 이후 24시간 이내에 발견하지 못하면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족에게 치매 실종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생사를 가르는 긴급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가족들의 생활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치매 노인의 실종은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돌봄을 맡은 가족 전체의 삶을 뒤흔든다. 실종이 반복되면 가족은 늘 불안에 시달리고, 돌봄 부담은 가중된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의 우울증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결국 실종 문제는 단순히 개별 가정의 고통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한 통의 문자로 이어지는 구조망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바로 ‘지문 사전 등록제’와 ‘배회 어르신 문자 알림 서비스’다. 경찰청은 실종 치매 노인을 신속히 찾기 위해 미리 지문과 사진, 보호자 연락처를 등록받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등록된 정보는 현장에서 경찰이 모바일 기기로 곧바로 확인할 수 있어 신원 확인 시간을 대폭 줄였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문자로 알림을 보내는 시스템도 정착하고 있다. 실종 신고가 접수되면 인근 주민 수천 명에게 동시에 문자가 발송돼, 시민들이 함께 수색에 동참할 수 있게 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 제도는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서울의 한 사례에서는 치매로 실종된 80대 여성이 있었는데, 인근 주민이 받은 문자 알림 덕분에 불과 30분 만에 발견됐다. 경찰과 시민이 신속히 공조한 덕분이다. 단 한 통의 문자가 생명을 구한 셈이다. 특히 이러한 시스템은 치매 가족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동안은 실종 신고를 해도 수색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발견 가능성이 낮아 가족들이 불안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제는 이웃과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나선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준다. 또한 시민 입장에서도 사회적 연대의식을 체험하는 계기가 된다. 단순히 ‘남의 일’로 여겨지던 치매 문제가 ‘우리 모두의 일’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아직 제도의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지문 사전 등록률이 전체 치매 환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문자 알림 서비스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와 오남용 우려도 남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이 제도는 고령화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회 안전망임이 분명하다.
치매 친화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문자 알림과 지문 등록 같은 제도적 장치는 분명 효과적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치매 환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치매 친화적 사회(dementia-friendly society)’라고 부른다. 단순히 환자를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 치매 환자와 가족이 지역사회 속에서 존엄을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영국은 전국적으로 ‘치매 친화 마을’을 조성해 상점 직원, 버스 기사, 우체국 직원 등 일상 속 모든 시민이 치매 환자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도록 교육한다. 일본은 ‘치매 서포터즈’라는 제도를 통해 일반 시민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치매 환자를 돕는 역할을 맡긴다. 한국에서도 최근 비슷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사회적 인식 개선도 필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치매를 ‘부끄러운 병’으로 여기고, 환자를 사회적 공간에서 배제하려 한다. 그러나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이며, 고령화 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는 공동 과제다. 치매 환자를 숨기고 격리하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사회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치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상인회나 택시조합 등이 치매 환자 대응 매뉴얼을 공유한다면 실종 사고는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치매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순간, 그 해법은 더 넓고 강력해진다.
결론: 한 통의 문자가 보여준 사회적 연대
길을 잃은 치매 노인을 찾는 과정에서 발송되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는 단순한 알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연대의 상징이자,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내는 안전망이다. 노인의 존엄을 지키고 가족의 눈물을 막는 일은 특정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경찰, 지자체, 복지기관,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주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한 사람의 관심이 때로는 생명을 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했다. 앞으로는 단순히 제도적 장치에 머무르지 않고, 치매 친화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종합적 노력이 필요하다. 치매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직면할 수 있는 공동의 현실이다. 한 통의 문자에서 시작된 사회적 안전망을 더욱 확장시켜, 노인이든 청년이든 누구나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