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보다 더 무서운 건 무능한 정치다
가뭄은 예나 지금이나 민생을 뒤흔드는 가장 큰 재앙 중 하나다. 하늘이 내리는 비 한 방울에 농사가 좌우되던 시절 비가 오지 않으면 삶이 무너졌고 공동체는 언제든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그래서 왕은 하늘에 기도했고 백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우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역사를 들여다보면 기우제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과 정치 그리고 책임의 문제였다. 오늘날 강릉의 물 부족 사태를 마주하며 우리는 기우제의 본질과 현대적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된다.
하늘에 비는 빌고 땅의 민심을 다스리다
고려 충숙왕 16년 1329년 극심한 가뭄이 들자 왕은 무격 즉 무당과 박수를 대거 동원해 폭무기우(曝巫祈雨)를 열었다. 무당들을 뙤약볕 아래 세워두고 비가 내릴 때까지 춤과 기도를 강요한 것이다. 엿새를 버티지 못하고 도망친 이들은 다시 붙잡혀 가혹한 형벌을 당했다. 당시 사람들은 접신한 무당에게 고통을 주면 하늘이 불쌍히 여겨 비를 내린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비가 오면 왕의 지극한 정성 덕분이라 선전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무당의 무능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었다. 결국 기우제는 백성을 위로하기보다 왕권을 지탱하는 도구였다.
조선은 이를 한 단계 더 제도화했다. 왕은 종묘와 사직 원구단에서 정례 기우제를 지냈고 가뭄이 닥치면 즉시 의례를 열었다. 가뭄은 왕의 덕이 부족해 하늘이 벌을 내린 결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유교 국가라 무당을 배척했음에도 책임을 떠넘길 대상으로 무당은 여전히 기우제 현장에 불려 나왔다. 천자라 불린 왕조조차 하늘에 굽실거리며 민심을 다독이는 상황에서 무당은 희생양이자 권력 유지의 장치였던 셈이다.
재해보다 더 큰 재앙, 무책임한 권력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지만 국가의 대응은 선택의 문제다. 조선왕조 519년 동안 가뭄이 기록된 사례는 419회로 1.2년에 한 번꼴로 찾아온 셈이다. 특히 1670년에서 1671년의 경신대기근은 가뭄과 풍수해가 겹치며 백여만에 달하는 사망을 초래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부모가 자식을 팔고 심지어 인육을 먹었다는 극단적 상황까지 보고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었다. 전염병이 돌자 고위 관리들은 책임을 피하려 서울을 떠났고 관료 체계는 사실상 붕괴됐다. 재해는 하늘이 내렸지만 피해를 키운 것은 무능한 정치였다.
오늘날 강릉의 물 부족 사태는 기우제를 떠올리게 한다. 오봉저수지 하나에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 여름철 관광객 폭증을 방치한 행정 위기에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정치인들 주민들은 생수에 의존하며 씻지도 못한 채 더위를 견뎌야 했다. 이는 더 이상 가뭄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무능이 낳은 인재다. 가뭄보다 정치인이 더 큰 재앙이라는 비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재앙은 반복된다
기우제는 단순히 하늘에 비는 기도가 아니었다. 백성의 불안을 달래고 왕의 권위를 세우며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적 장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실제 문제 해결은 뒷전이었다는 사실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누군가를 탓했고 비가 내리면 왕의 공으로 돌렸다. 백성은 언제나 피해자였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기후 위기와 가뭄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그 피해를 줄이는 것은 사회적 구조와 정책의 몫이다. 그러나 정작 정치권은 위기 때마다 책임을 떠넘기며 본질을 외면한다. 이것은 고려와 조선의 기우제 정치와 무엇이 다른가.
강릉 사태는 물 공급의 다변화 관광객 수요 관리 재난 대응 시스템 강화 등 수십 년간 준비했어야 할 과제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간 대책은 없었고 피해가 터지고 나서야 허둥대는 모습이 반복된다. 역사가 보여주듯 재해보다 더 큰 재앙은 무능한 정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제단 앞의 형식적 기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과 책임 있는 대응이다.
맺음말 정치의 기우제를 멈춰라
천지신명이시여 마른 대지에 비를 라고 임금과 백성이 함께 외친 그 기도가 오늘날 다시 울려 퍼진다면 그것은 하늘이 아닌 국민의 귀에 닿아야 할 것이다. 재해의 피해를 키우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고 그 사람은 곧 책임을 다하지 않는 정치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이제는 기우제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기를 탓하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며 책임지는 정치가 절실하다. 가뭄보다 더 무서운 재앙은 무능한 권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