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징병제 논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다시 묻다

여성과 군대의 관계는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시대 진흥왕 때 도입된 원화 제도는 여성 지도자를 중심으로 젊은 인재를 선발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 살육 사건으로 제도가 폐지되며 여성의 군사적 역할은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수세기 동안 여성은 전장에서 지휘관으로 활약하기보다는 전쟁의 뒷전에서 간호와 지원을 담당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군 복무 문제는 다시금 공론의 장으로 올라왔다. 특히 병력 자원 부족이 심각해지는 지금, 여성 징병제는 단순한 논쟁거리를 넘어 국가 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1. 신라 원화에서 한국 여군 창설까지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37년, 준정과 남모라는 두 여성이 원화로 선발되어 청년들을 이끌었으나,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결국 살인 사건으로 이어졌다. 왕은 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미모와 기개를 갖춘 남성을 뽑아 화랑으로 삼았다. 이 사건은 여성 지도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체계적 장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후 한국사에서 여성은 정규군의 지휘관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6·25 전쟁은 상황을 바꿨다. 정부는 여성들의 자원 입대 요구를 받아들여 1950년 8월 여자의용군을 모집했다. 500명의 1기생은 짧은 훈련을 거쳐 곧바로 낙동강 전선 등지로 배치됐다. 그들은 총을 들고 싸우는 전투병뿐 아니라 간호, 심리전,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군의 공백을 메웠다. 9월 6일은 훗날 여군 창설 기념일로 제정되었고, 이는 한국군 역사에서 여성의 역할이 제도적으로 인정된 첫 사례로 남았다.

이후 여성 군인은 수적으로는 소수였지만 지속적으로 존재감을 넓혔다. 그러나 여전히 지원군이나 비전투병과 중심의 역할이 많았다. 본격적인 여성 징병제 논의는 병력 절벽이 눈앞으로 다가온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다.

2. 여성 징병제 논의의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 징병제는 더 이상 공상적 화제가 아니다. 최근 국회에서 여성의 자발적 현역 복무를 가능케 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관심이 고조됐다. 단순히 남녀 간 공정성 논쟁을 넘어서, 실제 병역 자원 부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약 45%가 여성 징병제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강요가 아니라 "왜 우리는 현역으로 복무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가"라는 역설적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여성 징병제 도입 논의에는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가 공존한다. 긍정적으로는 병력 자원을 보완할 수 있으며, 성별에 따른 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체계적인 선발과 훈련을 거친 여성은 전투력과 조직력 측면에서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는 물리적 체력 차이와 전투 효율성 문제가 지적된다. 단순히 병력 수를 늘린다고 군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 징병제를 단순한 성평등 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군대는 상징적 균형을 맞추는 공간이 아니라 국가 안보의 최전선이다. 만약 여성 징병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철저히 병력 운용의 효율성과 국가 안보 전략에 근거해야 한다.

3. 여성 병역 참여의 대안과 보완책

여성 징병제가 당장 현실화되기 어렵다면,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여성의 자발적 현역 복무를 장려하는 유인책이 검토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찰·소방·교정직 공무원 채용 시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군 복무 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주거·금융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자원 입대를 촉진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실질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여성의 특성을 살려 비전투 분야에서부터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 정보 분석, 사이버 안보, 군 의료, 심리전, 감찰 분야는 체력보다는 전문성과 집중력이 요구되므로 여성 인력이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이스라엘, 노르웨이, 핀란드 등 일부 국가는 이미 여성 병역 참여를 제도화하여 성별의 한계를 넘어선 운영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단순히 여성만을 병역 자원으로 고려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이나 중장년층까지 포함한 다양한 대안이 병행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일정 조건을 충족한 외국인에게 병역을 조건으로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운영해왔다. 우리도 유능한 외국인 학생이나 체력과 경험을 갖춘 중장년층을 경계·지원 병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결론: 여성 징병제, 시대적 요구에 대한 냉철한 논의 필요

병력 자원 부족은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인구 절벽이 가속화되면서 기존의 남성 중심 징병 체제만으로는 국가 안보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여성 징병제를 단순한 성평등 논리로 추진한다면, 군의 본질적 목적과 효율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여성 징병제 논의는 단순한 찬반 대립을 넘어, 군의 구조적 개혁과 효율적 병력 운용을 고민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병력 부족을 메우면서도 전문성과 다양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한다면, 여성의 군 복무는 단순한 수적 보충이 아니라 새로운 군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국가 안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찾는 것이다. 여성 징병제 논의는 그 출발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