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산업 육성과 독점 방지 정책
21세기는 ‘데이터의 시대’라 불릴 만큼, 데이터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원이 되었다. 제조, 금융, 유통, 의료, 교육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데이터는 혁신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 활용이 급증할수록 독점과 불평등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대형 플랫폼 기업이 데이터를 독점하면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경쟁에서 밀려나고, 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데이터 산업을 건강하게 육성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공정, 그리고 보호의 균형이 필요하다.
1. 데이터 경제의 부상과 산업 구조의 변화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의 발전은 데이터의 수집·저장·분석·활용 과정을 혁신적으로 바꾸었다. 특히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Data-driven decision making)’은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경험과 직관이 의사결정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소비자 행동 데이터와 시장 분석 알고리즘이 비즈니스 전략의 중심에 서 있다. 정부 역시 데이터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 한국판 뉴딜, 디지털플랫폼정부 추진 전략 등 국가 차원의 데이터 인프라 구축 정책이 확대되면서, 공공 데이터 개방과 산업 데이터 거래소가 활성화되고 있다. 예컨대 금융 분야에서는 마이데이터(MyData) 사업이 본격화되며 개인의 금융 정보가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되고, 의료 분야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환자의 진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 경제의 확장은 동시에 시장 집중을 가속화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글로벌 IT기업은 방대한 데이터 자원을 통해 AI 경쟁력을 강화하며 ‘데이터 독점’을 공고히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이 축적한 데이터 규모가 중소기업을 압도하면서 산업 생태계의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 데이터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규모의 경제’를 형성하기 때문에, 한 번 형성된 독점 구조는 쉽게 깨지기 어렵다.
2. 데이터 독점의 문제와 공정 경쟁의 위기
데이터 독점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민주적 시장 질서와 사회적 신뢰를 위협한다. 첫째, 시장 지배력의 집중이다. 대형 플랫폼이 막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 행동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광고·판매·유통을 장악하게 되면 중소사업자는 시장 접근 자체가 어려워진다. 둘째, 경쟁 왜곡이다. 데이터 접근성이 낮은 기업은 기술력이나 아이디어가 뛰어나더라도 제대로 경쟁하지 못한다. 셋째, 개인정보 침해와 윤리 문제다. 데이터가 곧 자본이 되는 시대에, 기업은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자의 동의를 넘어서 정보 수집을 시도하기 쉽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데이터 카르텔(Data Cartel)’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일부 대형 플랫폼의 독점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예컨대 유럽연합(EU)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4년부터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해 구글, 메타, 애플 등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 독점을 규제하고 있다. DMA는 플랫폼이 제3자 기업의 데이터를 부당하게 활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사용자에게 데이터 이동권(Data Portability)을 보장한다. 사용자는 원할 경우 자신의 데이터를 다른 플랫폼으로 옮길 수 있어, 독점 기업의 영향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 한국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이 온라인 쇼핑, 모빌리티, 금융 등 다양한 산업에 진출하면서 중소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제한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독점 방지법’ 제정을 검토 중이다. 데이터의 공정 이용과 거래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는 데이터 공유 플랫폼, 공공 데이터 결합 센터, 표준화된 데이터 라이선스 체계 등이 있다. 그러나 아직은 법적 근거가 미비하고, 산업별 이해관계가 복잡해 제도화가 더디다.
3. 데이터 산업 육성과 독점 방지를 위한 정책 방향
데이터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활용 확대’와 ‘공정 경쟁’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첫째, 공공 데이터의 개방과 민간 데이터의 결합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행정·의료·교통 등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민간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되, 개인정보 보호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명정보 활용 제도를 고도화하고, 데이터 결합 시 자동 익명화 기술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데이터 유통 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데이터 거래는 표준화된 가격 체계가 없어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한 데이터 거래를 위해 ‘국가 데이터 거래소’를 확대하고, 데이터 가격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셋째, 데이터 독점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제도도 보완되어야 한다. 플랫폼 기업이 타사의 데이터를 부당하게 이용하거나,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차원의 제재가 필요하다. 또한 데이터 기반 인수·합병(M&A)에 대한 사전 심사 제도를 도입해 시장 집중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셋째,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데이터 활용 역량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데이터 인프라 구축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 없이는 영세기업이 참여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데이터 바우처 지원사업’, ‘공공 클라우드 인프라 개방’ 등 실질적인 지원책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지역 중소기업이 데이터 경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방 데이터 센터 구축과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병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데이터 윤리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데이터 활용이 늘어날수록 개인정보 유출과 오남용의 위험도 커진다. 따라서 기업은 투명한 데이터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위원회를 중심으로 엄격한 감독과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 산업의 성장은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결론: 공정한 데이터 생태계가 미래 경쟁력을 만든다
데이터는 21세기 산업의 석유라 불리지만, 잘못 다루면 ‘독이 되는 자원’이 될 수 있다. 데이터 산업의 성장은 혁신을 촉진하지만, 독점은 시장의 건강성을 무너뜨린다. 따라서 정부는 데이터 활용의 자유와 공정 경쟁의 원칙을 조화시켜야 한다. 공공 데이터 개방, 독점 방지 법제화, 중소기업 지원, 데이터 윤리 확립 등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데이터는 특정 기업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자산이라는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데이터 산업의 공정한 발전은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균형’의 문제다. 공정하고 투명한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할 때, 한국은 진정한 데이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