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리쇼어링(해외 공장 복귀) 가능성
최근 몇 년간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과 지정학적 갈등, 팬데믹의 충격은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을 남겼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는 해외 생산 거점을 두었던 기업들이 물류 차질과 비용 상승, 국가 간 긴장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리쇼어링(Reshoring)’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리쇼어링은 해외에 진출했던 생산 시설을 본국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전략으로, 단순한 기업 경영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 전략과도 직결된다. 그렇다면 한국 제조업의 리쇼어링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1. 리쇼어링을 촉진하는 글로벌 환경
리쇼어링 논의가 본격화된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해외 생산 기지 의존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마스크, 반도체, 의약품 등 전략 품목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면서 각국은 ‘자국 내 생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둘째,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특정 국가,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었다. 미국과 유럽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통해 기업들의 리쇼어링을 적극 장려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 흐름이 되었다. 셋째, ESG 경영의 확산과 친환경 요구도 리쇼어링을 자극하고 있다. 장거리 운송에 따른 탄소 배출을 줄이고, 공정한 노동 환경을 보장하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진 것이다. 한국 역시 이러한 세계적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핵심 산업에서 공급망 안전성 확보는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따라서 리쇼어링은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과제가 되고 있다. 다만 해외 생산비용 절감 효과와 국내 복귀 비용 부담 사이에서 기업들의 고민은 여전히 깊다.
2. 한국 제조업 리쇼어링의 한계와 과제
한국 정부는 이미 몇 차례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해왔다. 세제 지원, 입지 혜택, 연구개발(R&D) 지원 등을 통해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의 국내 복귀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문제’다. 한국은 인건비와 부지, 전기료 등 생산 비용이 높아,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해외에서 철수해 국내로 돌아올 유인이 크지 않다. 실제로 리쇼어링 기업 다수가 대기업이 아닌 중소·중견기업이며, 규모 또한 제한적이다. 또한 산업 생태계와 인력 문제도 큰 장애물이다. 오랜 기간 해외에 생산 기지를 두면서 현지 협력업체와 공급망이 형성되었는데, 이를 국내에서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어렵다. 특히 숙련된 생산직 인력 부족은 리쇼어링 논의에서 자주 지적되는 문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는 제조업 경쟁력 약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더 나아가 규제 환경 역시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에서는 환경 규제, 노동 규제, 각종 인허가 절차가 상대적으로 까다롭기 때문에 기업들이 리쇼어링을 망설이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단순히 세제 혜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3. 리쇼어링을 위한 전략적 접근
한국에서 리쇼어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돌아오라’는 구호를 넘어, 구체적인 산업 전략과 생태계 재편이 필요하다. 첫째,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모든 산업을 무작정 불러들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므로,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심 산업부터 단계적으로 리쇼어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인력 문제 해결이 필수적이다. 직업 교육과 재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해 숙련된 인력을 양성하고, 외국인 노동자 활용도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셋째, 기업이 국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스마트 팩토리, 자동화, AI 기반 생산 시스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생산비용 격차를 기술 혁신으로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정부와 기업 간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정부는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안정적인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은 단기적 비용 부담을 넘어 장기적 공급망 안정성을 고려해 리쇼어링을 전략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동시에 글로벌 협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공급망이 완전히 자국 내에서만 해결되기는 어려우므로, 동맹국과의 협력적 생산·공급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결론: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
리쇼어링은 단순히 기업의 경영 전략을 넘어 국가 경제와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리쇼어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현실적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무작정 해외 공장을 불러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핵심 산업에 집중하고 기술 혁신과 인력 양성을 병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리쇼어링은 비용과 효율의 문제를 넘어, 국가와 기업, 그리고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결국 제조업 리쇼어링의 성공 여부는 한국이 얼마나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