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연금 제도 개혁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이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인구 구조의 변화를 넘어, 사회 시스템 전반의 재편을 요구하는 중대한 변곡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연금 제도의 개혁이다.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현재의 연금 구조는 지속 가능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젊은 세대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연금 제도 개혁은 단순히 노후 소득 보장을 넘어, 세대 간 형평성과 사회적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연금 제도의 위기: 빠르게 늙는 사회의 경고음

한국의 연금 제도는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당시만 해도 평균 수명이 짧고, 경제 성장률이 높았기 때문에 납부자보다 수급자가 적은 구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평균 기대수명이 84세를 넘어섰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0.6명대까지 떨어졌다. 이는 곧 ‘내는 사람은 줄고 받는 사람은 늘어나는’ 구조적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에 따르면 현 제도가 유지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경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점 이후에는 현 세대가 납부한 보험료로는 다음 세대의 연금을 충당하기 어렵게 된다. 문제는 재정 고갈만이 아니다. 연금의 신뢰도 역시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낮고, 물가 상승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실제로 연금 수급자 중 상당수가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연금 외 소득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연금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청년층은 “내가 낸 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불신을 키우고 있다. 이는 사회적 연대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신호다. 연금 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재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구조의 변화, 세대 간 책임 분담의 불균형, 그리고 제도 설계의 경직성이 맞물린 복합 위기다. 따라서 연금 개혁은 단기적인 재정 조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계약의 재구축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세대 간 형평성과 제도적 개편의 필요성

현행 연금 구조는 ‘현 세대가 낸 돈으로 이전 세대의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 방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와 경제 성장 둔화로 이 방식은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청년층 입장에서는 납부액은 늘어나지만,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줄어드는 ‘역차별 구조’로 인식된다. 세대 간 갈등이 연금 문제를 중심으로 심화될 수 있는 이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금 제도의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 첫째, 보험료율 조정과 수급 연령 상향이 불가피하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로 OECD 평균(18~20%)의 절반 수준이다. 낮은 보험료율로는 제도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점진적인 인상 방안이 필요하다. 다만, 단순히 부담만 늘리는 방식은 사회적 저항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투명한 재정 운영과 국민 신뢰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수급 개시 연령을 현행 63세에서 65세 이상으로 점진적으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만큼 더 오래 일하고 늦게 받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다만 건강 상태나 직업 특성상 장기 근로가 어려운 계층을 위한 별도 안전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다층적 노후 보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국민연금 하나에 의존하는 현재의 단층 구조로는 충분한 노후 보장이 불가능하다. 기업이 운영하는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2·3층 보장체계를 실질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 특히 개인연금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중·저소득층을 위한 ‘매칭 지원제도’를 도입한다면 보다 폭넓은 참여가 가능할 것이다. 이와 함께 기초연금의 사각지대 해소도 중요하다. 소득 하위 노년층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 수준의 지급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

연금 개혁은 기술적 조정 이상의 문제다. 사회적 신뢰와 세대 간 연대의 회복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지금까지 정부의 연금 논의가 번번이 좌절된 이유는 ‘누구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연금 개혁은 미룰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지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정치권은 단기적 인기보다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시해야 한다. 첫째, 개혁의 전제는 투명성이다. 연금 재정 현황, 투자 수익률, 지급 전망 등을 국민에게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국민이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면 어떤 개혁도 지지를 얻기 어렵다. 둘째, 세대 간 대화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와 노년층 모두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금 개혁 논의를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장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셋째, 연금 제도는 단순히 ‘노후 소득 보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일할 의욕과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고령층이 일정 기간 더 일할 수 있도록 탄력적인 근로 환경을 마련하고, 연금 수급과 노동 참여를 병행할 수 있는 제도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연금 개혁은 기술 발전과 인구 변화에 대응하는 장기 전략이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로 인한 고용 구조 변화는 미래 연금 재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 환경에 맞춰 ‘디지털 세대’의 소득 구조를 반영하는 맞춤형 연금 모델이 필요하다.

결론: 세대 공존을 위한 사회적 계약의 재구성

고령화 사회에서 연금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지금의 제도를 그대로 두면, 머지않아 연금은 사회적 신뢰를 잃고 세대 간 분열의 원인이 될 것이다. 반면 현명한 개혁은 세대 간 공존을 가능하게 하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할 수 있다. 연금 제도는 단순한 재정 제도가 아니라 ‘세대 간 약속’이자 ‘국가의 신뢰 계약’이다. 지속 가능한 연금 개혁은 공평한 부담, 안정적 보장, 그리고 투명한 운영을 축으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가 “내가 낸 연금이 나의 미래를 지탱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현명한 제도 개혁을 통해 그것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 있는 결단과 세대 간 연대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