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25의 게시물 표시

고물가 시대 소비자 생활 안정 방안

고물가 시대는 단순히 물가가 오르는 경제 현상을 넘어,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과 직결된 사회적 위기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불안, 국제 유가 상승, 지정학적 갈등, 기후변화로 인한 농산물 가격 급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생활 필수재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며, 장바구니 물가 부담은 가계의 숨통을 조이게 만들고 있다. 특히 서민과 취약계층일수록 고물가의 직격탄을 맞으며 생활 안정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제 고물가 대응은 경제정책의 핵심 의제가 되었으며, 소비자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다각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1. 물가 상승의 원인과 소비자 충격 물가 상승은 크게 외부 요인과 내부 요인으로 나뉜다. 외부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의 불안이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렸고, 팬데믹 이후 공급망 회복 과정에서의 병목 현상도 주요 요인이었다. 내부적으로는 고금리 정책, 원화 약세 등이 수입 물가를 자극해 국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요인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식료품, 교통비, 주거비 등 생활 필수 영역의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이는 소비 위축과 생활 불안으로 이어진다. 물가 상승률이 1~2%대일 때는 체감이 크지 않지만, 4~5%를 넘어설 경우 가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특히 소득 대비 생활비 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은 고물가 상황에서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는다. 2. 정부와 사회의 대응 전략 고물가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다. 우선 공공요금 관리가 중요하다. 전기, 가스, 교통요금은 물가의 핵심 요소이자 소비자 생활과 직결되므로, 정부가 인상 속도를 조절하거나 한시적 보조를 통해 서민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 또한 필수 생필품과 농축수산물의 공급망을 안정화해야 한다. 비축 물량을 방출하거나 수입 다변화를 통해 가격 급등을 억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기차 산업 경쟁과 배터리 패권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전기차 산업은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단순한 교통수단의 변화가 아니라, 에너지 구조와 산업 패러다임 전반을 바꾸는 혁명적 전환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배터리다. 전기차의 성능, 가격, 안전성, 심지어 국가 경쟁력까지 배터리 기술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전기차 산업 경쟁은 곧 배터리 패권 경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전기차 시장 확대와 글로벌 경쟁 구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신차 판매의 절반 이상이 전기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 정부가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고 보조금 정책을 확대하면서 전기차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통해 자국 내 생산된 전기차와 배터리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자리 잡았고, 자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한국은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전기차 산업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지만, 시장 판도는 여전히 치열한 경쟁 상태다. 2. 배터리 기술과 패권 경쟁 전기차 경쟁의 본질은 배터리 기술에 있다. 배터리는 전체 차량 가격의 30~40%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 부품이다.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류지만, 각국과 기업들은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화재 위험이 적으며 충전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어 전기차 대중화를 가속할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글로벌 톱3 안에 들며 기술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CATL, BYD는 원재료 확보와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급격히 늘려가고 있다. 일본 역시 토요타를 중심으로 전고체 배터리...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문제는 단순한 주거의 영역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의제다. 집값이 오르면 자산 불평등은 심화되고, 전세난이나 월세 폭등은 서민들의 삶을 압박한다. 반대로 집값이 급락하면 금융 시장과 경기 전반이 충격을 받는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은 곧 민생과 직결된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은 단순한 규제나 단기적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1. 공급 확대와 수요 관리의 균형 부동산 시장 안정화의 핵심은 ‘공급 확대’와 ‘수요 관리’를 어떻게 균형 있게 맞추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 급등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수도권, 서울 등 특정 지역에 수요가 집중되면서 지방과의 가격 격차는 더욱 심화됐다. 이에 정부는 공공주택 확대, 도심 내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신도시 조성 등을 통해 공급을 늘리고자 한다. 그러나 단순히 집을 많이 짓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수요 관리가 병행되지 않으면 다주택자 투기 수요가 다시 유입되어 가격 불안을 재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주택자와 실수요자 중심의 공급 정책, 다주택자 규제 강화, 그리고 투기성 대출 억제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2. 전·월세 시장 안정화 최근 몇 년간 집값 상승과 더불어 전·월세 시장의 불안도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전세 제도의 불안정성, 월세 전환 가속화, 임대차 3법의 부작용 등은 서민 주거 불안을 키웠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 첫째,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늘려 무주택 서민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둘째, 임대차 계약의 안정성을 강화하면서도 임대인의 권리를 일정 부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균형이 필요하다. 셋째, 임대료 상한제나 표준임대료 제도를 도입하여 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전세 의존 구조를 줄이고,...

플랫폼 기업 독점과 공정 경쟁

플랫폼 경제는 21세기 들어 가장 강력한 산업 구조 변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전자상거래, 검색, 배달, 모빌리티, 소셜미디어 등 우리의 일상은 이미 플랫폼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 뒤에는 독점화 문제와 공정 경쟁 훼손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특정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면 이용자 선택권은 제한되고, 중소 사업자들은 설 자리를 잃으며, 장기적으로 혁신 생태계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플랫폼 기업 독점과 공정 경쟁은 단순한 산업 문제를 넘어 민주적 시장 질서와 사회적 신뢰를 지켜내는 과제다. 1. 플랫폼 독점의 구조적 특징 플랫폼 기업은 ‘네트워크 효과’라는 고유한 성질을 가진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서비스 가치가 높아지고, 이는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선순환을 만든다. 예를 들어 특정 배달앱에 소비자와 가맹점이 몰리면, 다른 배달앱은 경쟁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이 과정에서 선발 주자는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후발 주자는 초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된다. 또한 플랫폼은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여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데이터는 시간이 갈수록 누적되므로 기존 강자가 더욱 유리해진다. 결국 시장은 소수 대기업이 독점하는 구조로 귀결되며, 이는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2. 독점이 초래하는 문제 첫째,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된다. 시장이 독과점 구조로 재편되면 서비스 가격이나 수수료는 기업의 의사에 좌우된다. 실제로 일부 배달 플랫폼은 점유율이 안정된 이후 수수료를 올려 소상공인의 부담을 키웠다. 둘째, 혁신이 위축된다. 독점 기업은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날 경우 인수합병으로 흡수하거나 가격 인하 공세로 시장 진입을 차단한다. 그 결과 창의적이고 파괴적인 혁신이 자리 잡기 어렵다. 셋째, 불공정 행위가 발생한다. 플랫폼 사업자가 자사 서비스를 검색 상단에 노출하거나, 데이터를 독점적으로 활용하는 사례...

가상자산 제도화 필요성

가상자산은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일부 기술 마니아나 투기적 투자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대표적 암호화폐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뿌리내렸으며, 블록체인 기반 기술은 금융뿐 아니라 물류, 게임, 예술, 헬스케어 등 다방면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 역시 가상자산 투자 인구가 수백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지만, 정작 제도권의 대응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규제는 모호하고, 투자자 보호 장치는 부족하며, 산업의 건전한 발전은 더디다. 세계 각국이 이미 가상자산 제도화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가운데, 한국도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 무규제 상태가 낳는 사회적 비용 가상자산 시장은 본질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크고, 신생 산업 특유의 불안정성이 내재돼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뚜렷한 법적 틀이 없어 이러한 위험이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에게 전가된다. 실제로 국내외 가상자산 거래소 해킹 사건은 수천억 원대 손실을 남기며 투자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또한 프로젝트 운영자들이 자금을 모은 뒤 돌연 사라지는 ‘먹튀 코인’ 사건도 적지 않았다. 이런 피해 사례가 반복되면서도, 피해자들이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명확한 관리 감독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투자자 불신은 커지고, 사회적 불만도 누적된다. 더욱이 무규제 상태는 범죄 위험까지 동반한다. 가상자산이 자금 세탁, 불법 도박, 마약 거래 등 불법 활동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와 같은 방임 상태는 투자자 개인의 피해뿐 아니라 금융 질서 전반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 해외 주요국의 제도화 흐름 이와 달리 해외 주요국은 이미 제도권 편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를 통해 가상자산을 증권 혹은 상품으로 분류하여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까지 이뤄...

스타트업 규제 완화와 혁신 성장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둔화되면서 새로운 활로로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스타트업은 기존 산업의 한계를 뛰어넘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혁신 기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스타트업이 마주하는 장벽은 만만치 않다. 복잡한 규제, 불확실한 제도 환경, 자금 조달의 어려움 등이 혁신의 싹을 꺾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규제 완화와 제도 혁신 없이는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어렵고, 국가 경제도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타트업을 둘러싼 규제 환경을 재검토하고 혁신 성장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1. 스타트업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의 현실 스타트업은 기존 대기업과 달리 안정적인 자본이나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려면 규제라는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핀테크 산업은 금융 안정과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규제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다. 모빌리티 서비스 역시 택시업계와의 갈등, 법적 공백 등으로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 헬스케어 분야의 경우 원격 의료나 개인 유전자 데이터 활용 등은 법적 제약이 커서 혁신 기술이 실생활에 적용되기 어렵다. 이처럼 규제가 신산업의 탄생을 막는 ‘사전 장벽’으로 작용하면, 스타트업은 글로벌 경쟁 무대에 진출하기도 전에 국내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규제가 빠르게 변하는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술은 몇 년 만에 완전히 달라지지만, 제도는 수십 년 전 기준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아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목을 잡는다. 2. 규제 완화가 가져올 혁신의 가능성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무조건 위험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도를 유연하게 조정하면 스타트업은 빠르게 시장을 테스트하고 성장할 수 있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일정 기간 동안 규제를 유예하고 신기술·신서비스를 시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제도는 ...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한국 산업 경쟁력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2020년대 들어 지정학적 갈등, 팬데믹, 에너지 전환, 기후위기, 공급망 탄력성 강화 요구 등 복합적 요인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 기업들은 단일 국가나 지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기존 모델의 취약성을 깨닫고 공급망을 다변화하거나 국가 내 재배치, 근거리 조달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 중간재와 제조업 의존도가 높아 이 같은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위협이자 기회다. 위기는 공급 차질과 비용 증가로 산업 전반에 부담을 주지만, 전략적 대응을 통해 한국 산업 경쟁력을 제고할 계기로도 삼을 수 있다. 이 글은 공급망 재편의 주요 흐름을 짚고 한국 산업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을 제안한다. 1 핵심 공급망 변화의 방향과 한국의 노출 지점 공급망 재편의 핵심 축은 다각화, 근거리화, 전략적 자급화, 디지털화다. 다각화는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조달처를 복수화하는 것이고 근거리화는 제조를 수요지 가까이 옮겨 운송비와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이다. 전략적 자급화는 반도체, 배터리, 희소금속처럼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심 품목을 자국 또는 우호국 기반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디지털화는 공급망 가시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 충격 대응력을 키운다.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자동차 부품 등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간재와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허브 역할을 해왔다. 이 구조는 수요처의 변동에 따라 큰 이익을 가져왔으나 동시에 지정학적 분쟁이나 생산 차질 시 높은 노출을 의미한다. 특히 중국 시장 의존도, 해상운송 중심의 긴 운송로, 일부 핵심 원자재의 해외 의존 등은 취약점으로 지목된다. 따라서 변화의 방향을 정확히 이해하고 산업별 취약 지점을 세밀히 진단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2 기회 요인과 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 공급망 재편은 한국 기업과 정책에 여러 기회를 제공한다. 첫째, 고부가가치 중간재와 핵심부품의 국산화 또는 근거리 재배치로 제조업의 업스킬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 반도체...

미디어 리터러시와 가짜뉴스 대응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뉴스와 정보를 접한다.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쏟아지는 알림, SNS를 통해 공유되는 기사와 영상, 유튜브나 포털에서 마주치는 콘텐츠까지, 정보는 넘쳐난다. 그러나 이 홍수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정치·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퍼져나가는 가짜뉴스는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고, 때로는 개인의 명예와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열쇠가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능력은 이제 시민의 기본 소양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가짜뉴스의 확산 구조와 사회적 피해 가짜뉴스는 단순한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를 넘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조작된 허위 정보(disinformation)를 포함한다. 특히 SNS와 메신저를 통한 확산 속도는 전통 언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클릭 수와 조회 수가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온라인 플랫폼의 구조 역시 가짜뉴스 확산을 부추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은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알고리즘은 이를 더 많은 이용자에게 노출시킨다. 그 피해는 단순히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는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심화시키고, 선거와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과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퍼진 ‘가짜 치료제’ 정보나 백신 음모론은 공중보건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또한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대한 왜곡된 정보는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기도 했다. 결국 가짜뉴스는 사회적 신뢰라는 공공재를 침식시키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필요성과 교육적 과제 가짜뉴스의 확산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영상 조작 기술인 딥페이크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가짜뉴스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보를 소비하는 시...

공공의료 강화와 의료 인프라 문제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과 의료 기술의 발전을 통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의료 수준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 화려한 성과 뒤에는 공공의료의 취약성과 지역 불균형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공공의료 체계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대규모 환자 발생에 대응할 수 있는 공공 병상과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민간 의료기관의 협조에 크게 의존해야 했다. 이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단순히 병상 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추고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향후 한국 의료 체계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1. 공공의료의 현주소와 구조적 한계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공공의료 비중이 현저히 낮다. 전체 병상 중 공공병원 비율은 약 10% 수준으로, 일본의 25%, 영국의 80%와는 큰 격차가 난다. 한국은 의료 서비스의 대부분을 민간 병원이 담당하는 구조인데, 이는 평상시에는 빠른 서비스와 환자 중심의 선택권 확대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민간 병원의 영리성 때문에 공공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코로나19 당시 확진자 급증으로 병상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민간 병원을 설득하고 보상해야 겨우 병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중보건의 영역을 민간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다. 더 큰 문제는 필수 의료 분야에서 나타난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상센터, 감염병 전문 병원 등은 수익성이 낮아 민간에서 기피한다. 이 때문에 지방 소도시에서는 아이가 열이 나도 진료할 병원을 찾기 어렵고, 임산부는 출산을 위해 장거리 이동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국민의 기본적인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결국 국가는 공공의료를 강화해 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 2. 지역 불균형과 의료 인프라의 취약성 한국 의료 체계의 또 ...

디지털 격차 해소 방안

디지털 기술은 현대 사회의 기본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은 경제활동뿐 아니라 교육, 복지, 문화생활까지 삶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이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연령, 소득, 지역, 장애 여부 등에 따라 디지털 접근성과 활용 능력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를 ‘디지털 격차’라고 부른다. 디지털 격차는 단순히 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교육 기회 상실, 경제적 불평등 심화, 사회적 소외 등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전략은 국가와 사회 전체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1. 연령과 세대에 따른 격차 디지털 격차의 가장 두드러진 요인은 연령이다. 젊은 세대는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기술을 습득하지만, 고령층은 새로운 기기나 서비스를 접할 때 낯설고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은행 업무가 대부분 모바일 앱으로 전환되면서, 스마트폰 활용이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금융 서비스에서 배제되거나 불필요한 수수료를 더 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비대면 교육과 온라인 행정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디지털 활용 능력이 부족한 고령층이나 취약계층은 필수 서비스 접근조차 어려워졌다. 단순히 사용법을 몰라서 생기는 불편을 넘어, 사회적 권리 보장에 큰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세대 맞춤형 교육과 평생학습 체계가 필요하다. 단기간 강의식 교육보다는 반복적이고 실습 중심의 교육이 효과적이며, 지역 도서관, 주민센터, 노인복지관 등을 활용한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한다. 2. 지역·소득 불평등이 만드는 디지털 격차 도시와 농촌, 소득 수준의 차이도 디지털 격차의 중요한 원인이다. 대도시는 인터넷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고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농촌이나 도서 지역은 여전히 통신망이 부족하거나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진다. 초고속 인터넷이나 5G망의 전국적 보급이 이루어진다...

노인 돌봄과 초고령 사회 대책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 중 하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이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노인은 가정과 공동체의 중심에서 존경받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돌봄과 생활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노인 돌봄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노후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지 체계, 경제 구조, 세대 간 관계를 시험하는 중요한 의제다. 초고령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며, 노인 돌봄의 지속 가능한 대책은 무엇일까. 급속한 고령화와 돌봄 수요의 폭발 고령화는 단순히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것을 넘어, 돌봄이 필요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평균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건강 수명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즉, 오래 살지만 아픈 기간도 길어지는 것이다. 치매, 파킨슨병, 만성질환 등 장기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가족이 모든 돌봄을 책임지던 전통적 구조는 이미 무너졌다.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 맞벌이 부부 확산으로 자녀가 부모를 전적으로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 결과 돌봄 수요는 커지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은 수요에 비해 부족하고, 돌봄 인력은 열악한 근무 여건과 낮은 처우 때문에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 이대로라면 초고령 사회의 돌봄 공백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현행 돌봄 체계의 한계 현재 한국은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중심으로 노인 돌봄을 지원하고 있다. 제도 도입 이후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으나 여전히 한계가 크다. 첫째, 서비스 질의 편차가 크다. 일부 요양시설은 전문성이 높고 환경이 좋지만, 많은 시설이 인력 부족과 재정 압박으로 기본적 돌봄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 둘째,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위태롭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장기요양보험 재정은 급격히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지방 소멸 위기와 균형 발전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인구학적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지방 소멸’이다. 농산어촌을 비롯한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인구 감소가 이미 일상이 되었고, 일부 지역은 소멸 위험 단계에 들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절반이 넘는 지역이 소멸 위험지수 기준에 걸려 있으며, 청년층 유출과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지역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과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중대한 과제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될수록 지방은 점점 더 쇠퇴하고, 결국 국토 전체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방 소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균형 발전을 이룰 것인가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인구 구조 변화와 지방 소멸의 현실 지방 소멸은 단순한 인구 감소 현상이 아니다. 특히 생산 가능 인구가 급격히 줄고 청년층이 지역을 떠나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다. 청년들은 더 나은 일자리, 교육, 문화 생활을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그 결과 지방에는 고령층만 남아 공동체의 활력이 떨어진다. 학교가 문을 닫고, 상권이 붕괴하며, 지방자치단체의 세수는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일부 농촌 마을에서는 신생아가 태어나지 않아 몇 년째 초등학교 입학생이 없는 경우도 흔하다. 이는 단순히 행정 구역의 소멸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역사와 문화가 함께 사라지는 문제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군사·안보, 식량 안보, 국토 균형 관리 측면에서도 지방 소멸은 국가적 리스크다. 특정 지역이 비게 되면 국토 관리와 활용에 공백이 생기고,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수도권 집중과 불균형의 심화 지방 소멸 위기는 수도권 집중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한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으며, 주요 기업 본사와 고급 일자리, 교육 및 의료 인프라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에서 청년이 머물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일자리 부족만이 ...

교육 격차와 공정성 논란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단순히 지식 전달의 차원을 넘어 계층 이동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해왔다.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교육은 그야말로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육이 더 이상 공정한 사다리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사교육 시장의 팽창, 지역과 계층에 따른 학력 격차, 입시 제도의 불신은 교육을 둘러싼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온라인 수업 환경 격차가 드러났고, 이는 단순한 학습 성취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불평등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교육 격차와 공정성 논란은 단순히 교육 제도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미래와 직결된 심각한 과제다. 1. 지역과 계층에 따른 교육 격차 교육 격차는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되지만, 가장 뚜렷한 것은 가정의 경제적 배경이다. 부모의 소득과 학력이 높을수록 자녀가 우수한 교육 기회를 얻을 가능성은 커진다. 반대로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은 사교육이나 방과후 프로그램 접근성이 낮아 학습 격차가 벌어진다. 특히 대도시와 지방의 교육 인프라 차이는 구조적 문제를 고착화한다. 서울 강남권은 우수 교사, 다양한 교육 시설, 풍부한 학원 자원을 기반으로 학생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지만, 농산어촌 지역은 여전히 교사 수급이나 교육 콘텐츠 접근에서 열악하다. 이러한 지역적 격차는 대학 입시 경쟁에서 그대로 드러나며, 결국 학벌에 따른 사회적 격차로 이어진다. 코로나19 시기 원격수업의 확산은 이런 문제를 더 분명히 보여주었다. 가정마다 디지털 기기나 인터넷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학습의 질에서 큰 차이가 발생했고, 이는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 학생들에게 특히 불리하게 작용했다. 2. 입시 제도와 공정성 논란 한국 사회에서 교육 공정성 문제는 곧 입시 제도와 직결된다. 대학 입시는 단순히 진학 문제를 넘어 취업과 사회적 지위, 나아가 생애 전반의 경로를 좌우하는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혐오 표현 규제와 표현의 자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급격한 발전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과거에는 언론사나 출판사 같은 중개자가 있어야만 대중에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 민주주의를 더욱 활력 있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낳았다. 바로 ‘온라인 혐오 표현’이다.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언어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회적 갈등과 인간 존엄성 침해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혐오 표현 규제 필요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도 키우며, 오늘날 가장 뜨거운 사회적 딜레마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1. 혐오 표현이 남기는 사회적 상처 혐오 표현은 단순히 불쾌한 발언이 아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강화하고, 개인의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인종, 성별, 종교, 성적 지향, 장애 등 정체성과 직결된 요소를 공격하는 말은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특히 온라인 공간은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더 쉽게 공격적 언어가 난무한다. 피해자는 단순히 감정적 상처를 입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반복적인 혐오 표현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관계망에서 고립시키며, 심리적 우울과 불안까지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혐오 표현은 사회 전반에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예컨대 특정 성별이나 이주민 집단에 대한 비난이 지속적으로 유포되면, 그 집단은 실제 정책 결정 과정이나 노동 시장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혐오 표현은 단순한 언어적 폭력을 넘어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평등과 다양성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2. 표현의 자유와 규제의 경계 그렇다고 혐오 표현을 무조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답일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직업 윤리

인공지능(AI)의 확산은 이미 우리의 일상과 산업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스마트폰 음성비서, 챗봇 상담, 자율주행차, 의료 영상 판독, 금융 사기 탐지까지 AI가 없는 영역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거나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갈등과 윤리적 쟁점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직업 윤리 측면에서 AI의 확산은 깊은 고민을 요구한다. 인간의 노동 가치와 존엄, 그리고 사회적 신뢰가 기술 발전 속에서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가 핵심 과제다. 1. 인간의 노동 가치와 존엄의 문제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면서 일부 직업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콜센터의 상담 업무나 물류창고 분류 작업은 이미 AI 기반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노동의 본질적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AI가 사람을 ‘비용 절감 수단’으로만 바라보게 만든다면, 노동이 가진 존엄성이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단순히 인건비 절감에 집중하기보다, AI와 인간이 협력할 수 있는 직무 재설계에 나서야 한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윤리적 판단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동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2. 공정성과 책임성의 문제 AI의 확산은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 알고리즘이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하면 채용, 대출, 보험 심사 등에서 특정 집단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직업 기회를 제한하고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또한 AI가 내린 결정의 책임 소재 역시 불분명하다. 만약 AI가 채용 과정에서 차별적 판단을 내렸다면, 그 책임은 알고리즘을 만든 개발자에게 있는가, 이를 활용한 기업에게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시스템 오류로 치부해야 ...

청년 실업과 일자리 미스매치

한국 사회에서 청년 실업은 오래된 난제다. 매년 수십만 명의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려 하지만, 정작 이들을 받아줄 만한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공식적으로 7% 내외지만, 취업준비생·비경제활동인구 등을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20%를 훌쩍 넘어선다. 표면적인 수치보다 훨씬 많은 청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현상은 단순한 일자리 부족을 넘어, 구직자가 원하는 일자리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이 맞지 않는 구조적 불일치, 즉 ‘일자리 미스매치’에서 기인한다. 청년들은 기업이 요구하는 경험과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받고, 기업은 청년들에게 맞는 적절한 직무를 제시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1. 청년 실업의 현실과 원인 청년 실업 문제는 단순히 구직자가 많고 일자리가 적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일부 산업에서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의 일부 분야는 인력이 모자라 생산 차질까지 빚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에 쏠려 있다. 상대적으로 임금과 복지 수준이 낮고, 근무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이나 3D 업종은 기피된다. 이 같은 ‘선호와 현실의 괴리’가 청년 실업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또한 교육 시스템 역시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 대학 교육은 여전히 이론 중심으로 진행되며,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실무 역량을 키워주지 못한다. 기업은 ‘즉시 전력감’을 원하지만, 청년 구직자들은 실무 경험이 부족해 채용 과정에서 탈락하는 일이 많다. 여기에 고용 구조의 경직성도 문제를 심화시킨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 계약직·인턴·단기 아르바이트 형태의 일자리가 늘어나 청년들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내몰리고 있다. 2. 일자리 미스매치의 구조적 문제 일자리 미스매치는 산업 구조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

저출산 문제와 국가 생존 전략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 중 하나는 바로 저출산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명 수준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인구 감소라는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 경제, 사회안전망, 국방, 교육, 지역 공동체 등 거의 모든 영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위기다. 저출산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고, 미래 세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만큼 장기적 파급 효과를 지닌다. 따라서 저출산은 단순한 사회 문제를 넘어 국가 생존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과제다. 1. 저출산의 원인: 경제적 부담과 사회 구조 저출산의 원인은 다층적이다. 가장 두드러진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주거비, 교육비, 양육비 등 자녀를 키우는 데 필요한 비용이 과도하게 높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치솟는 집값은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 의지를 크게 꺾는다. 교육 경쟁 또한 심각하다. 사교육비 부담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며, 자녀 한 명을 ‘엘리트’로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은 출산을 기피하게 만든다. 여기에 불안정한 고용 환경, 장시간 노동 구조, 성별 불평등이 더해져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회적 인식 변화 또한 중요한 요인이다. 개인의 삶의 질과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결혼과 출산은 필수적 선택이 아니라 개인적 선택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출산율을 장기간 낮은 수준으로 고착화시키고 있다. 2. 저출산이 불러올 국가적 위기 저출산은 단순히 인구 감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성장의 동력이 약화되고 사회 시스템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첫째, 노동 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국가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젊은 인구가 줄어들면 생산성이 낮아지고, 세수 확보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둘째, 고령화는 사회복지 지출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국민연금, 건강...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산업의 균형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 불릴 만큼 중요한 자원으로 부상했다. 기업들은 소비자의 행동 패턴, 구매 이력, 위치 정보, 검색 기록 등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다. 정부 또한 정책 수립, 행정 효율성 강화, 공공서비스 개선을 위해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데이터 산업의 확장 이면에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정보 유출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자리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산업 발전은 종종 충돌하는 가치처럼 보이지만, 두 영역의 균형을 찾는 것은 미래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1. 데이터 산업의 성장과 가능성 데이터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 첨단 기술의 원천이다.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면 소비자의 선호를 예측할 수 있고, 금융권에서는 맞춤형 대출 상품이나 이상 거래 탐지를 가능하게 한다. 의료 분야에서는 환자의 진료 기록과 유전체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치료와 신약 개발을 가속화한다. 교통 분야에서는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시티 구축이 가능하다. 이처럼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혁신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따라서 데이터 활용을 제약하기보다는, 오히려 개방과 공유를 확대해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2. 개인정보 보호의 절실함 그러나 데이터 활용이 늘어날수록 개인 정보 침해 위험은 커진다. 실제로 대형 포털 사이트, 금융 기관, 의료 기관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수백만 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유출된 정보는 범죄에 악용되거나 스팸, 피싱 사기에 활용되기도 한다. 더욱이 디지털 환경에서는 개인이 동의하지 않은 방식으로 데이터가 수집·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맞춤형 광고를 위해 소비자의 검색 이력과 대화 내용이 분석되는 현실은 ‘감시 사회’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개인정보는 단순한 데이터 조각이 아...

우주 개발 경쟁, 국익인가 낭비인가?

21세기 들어 우주 개발은 국가 간 새로운 경쟁 무대로 떠올랐다. 냉전 시대 미·소 간의 달 착륙 경쟁이 과거였다면, 지금은 미국, 중국, 러시아는 물론이고 한국, 일본, 인도까지 다양한 나라가 우주 탐사와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민간 기업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우주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 ‘경제와 국익의 무대’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우주 개발이 과연 국가적 이익을 가져오는 일인지, 아니면 자원의 낭비에 불과한지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1. 국익을 위한 우주 개발의 필요성 우주 개발을 지지하는 측은 이를 단순히 과학적 호기심 충족이 아니라 국가 전략 차원에서 바라본다. 첫째, 안보 측면에서 위성 기술은 국방력 강화에 핵심적이다. 정찰 위성, 통신 위성, GPS 시스템은 현대전에서 승패를 좌우한다. 우주에서의 주도권이 곧 지상에서의 안보와 직결되는 것이다. 둘째, 경제적 가치가 크다. 위성 통신, 원격 탐사, 기상 관측 등은 이미 상업적 활용도가 높으며, 앞으로는 우주 자원 채굴과 우주 관광 같은 신산업이 막대한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국가 위상 제고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인류 최초의 달 탐사, 화성 탐사선 발사 등은 해당 국가의 기술력과 위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다. 실제로 인도는 2023년 달 남극 탐사에 성공하면서 국제적으로 ‘우주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2. 과도한 비용과 현실적 한계 반대로 우주 개발을 낭비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비용이 막대하다. 발사체 하나 개발에 수조 원이 들어가고, 실패하면 그 돈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기초과학 연구와 달리 즉각적인 경제적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국민 세금이 낭비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둘째, 인류가 직면한 당장의 문제들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기후변화, 빈곤, 고령화, 에너지 위기 같은 현안은 지구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우주 개발에 투입되는 자원이 더 시급한 분야에 쓰였어야 한다는 지적...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기술의 중요성

지구 평균 기온이 꾸준히 상승하고 이상 기후 현상이 일상화되면서 기후변화 대응은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폭염, 가뭄, 홍수, 미세먼지와 같은 현상들은 이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현재진행형 문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환경 기술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대응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에너지, 교통, 산업, 생활 전반에 걸쳐 친환경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지구 환경을 지키는 동시에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 기술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화석연료 사용이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산업혁명을 이끌며 인류의 발전을 가속화했지만, 그 대가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이에 따라 전 세계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수소, 바이오에너지 등은 대표적인 대체 에너지로 각광받는다. 그러나 단순히 발전 시설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에너지 저장 기술, 스마트 그리드, 고효율 전력 변환 시스템 등 첨단 친환경 기술이 병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태양광 발전은 낮 동안만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용량 배터리 저장장치(ESS)가 개발·상용화되고 있다. 풍력 발전 또한 바람의 세기와 위치에 따라 효율성이 달라지는데, 인공지능 기반의 최적화 기술과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 시스템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발전 방식의 교체가 아니라, 친환경 기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인 것이다. 산업 구조 혁신과 녹색 기술 산업 부문은 온실가스 배출의 또 다른 주요 원인이다.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전통적인 중후장대 산업은 탄소 배출이 많은 대표적 업종이다. 따라서 이들 산업의 탈탄소화 없이는 기후변화 대응이 불가능하다. 최근 주목받는 것은 ‘그린 산업 혁신’이다. 예컨대, 수소환원 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기술로,...

무너지는 자영업의 현실, 팍팍한 민생의 현주소 직시

거리마다 즐비했던 소상공인 점포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불 꺼진 상가 건물은 경기 침체의 생생한 증거이며, 그 앞을 지나는 시민들의 마음도 무겁게 한다. 자영업은 한국 경제의 뿌리와도 같은 영역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고금리, 고물가, 소비 위축의 3중고는 그 뿌리를 뒤흔들고 있다. ‘무너지는 자영업’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민생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민생이 얼마나 팍팍해졌는지 알 수 있다. 끝없는 적자와 줄어드는 손님 전국 자영업자 상당수는 매출 감소와 임대료, 인건비 부담 사이에서 버티고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급격히 늘어난 대출은 아직 갚지 못한 상태인데, 기준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여기에 원자재와 식자재 가격 상승이 겹치면서 ‘팔수록 손해’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 폐업률은 개업률을 웃돌고 있다. 특히 골목상권을 지탱하던 음식점과 소매업은 매출이 줄어든 지 오래다. 외식 대신 집밥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고, 온라인 쇼핑이 생활화되면서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손님이 줄어드니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고, 그렇다고 버티기도 힘든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버티다 못해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한다. 그러나 가게를 정리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 등 초기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해 빚만 남는 경우가 많다. 자영업자에게 ‘폐업’은 단순한 사업 종료가 아니라 삶의 붕괴로 이어진다. 불안정한 고용과 흔들리는 지역경제 자영업이 무너지면 지역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 소상공인은 단순히 개인의 생계 수단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고용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편의점, 식당, 미용실 등 동네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과 직원들은 지역 주민이 많다. 하지만 자영업자 사정이 나빠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인건비다. 이는 곧바로 고용 불안으로 이어지고, 취약계층의 생계에도 ...

노인 빈곤과 고용 현실, 지속 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 주변을 지나가다 보면 전단을 나눠주는 노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이 쥐여 주는 종이 한 장은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노후의 생계를 지탱하기 위한 고단한 노동의 증거다. 몇 시간 동안 서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일은 젊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데, 은퇴 연령을 훌쩍 넘긴 이들이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고령층이 늘어나는 가운데, 한국은 ‘노인 고용률 1위’라는 달갑지 않은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이 수치는 경제 활력의 증거가 아니라, 연금과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반영한다. 1. 높은 고용률의 그늘 국회예산정책처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37.3%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일본조차 25.3% 수준에 그쳤음을 감안하면 이는 이례적인 수치다. 언뜻 보면 고령층이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긍정적 지표 같지만, 실제로는 불가피하게 노동시장에 재진입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 제도가 제공하는 소득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평균 연금소득은 월 80만 원에 불과하며, 2024년 1인 가구 최저 생계비인 134만 원에도 크게 못 미친다. 결국 많은 노인들이 노후를 즐기기는커녕 생계를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 일자리의 질은 열악하다. 65세 이상 임금근로자의 61.2%는 비정규직이며, 절반 가까이가 직원 수 10명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한다. 직종을 살펴보면 단순노무직 비중이 36.4%로 가장 높다. 이는 경력과 무관하게 노년층이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임금도 급격히 낮아진다. 정년 직전 50대 후반 근로자가 평균 350만 원을 받던 것과 달리, 60대 초반 재취업자의 평균 임금은 278만 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는 노년 노동이 단순한 소득 보전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재취업 과정에서 기존 경력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길잃은 치매노인 구하는 한 통의 문자

도심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치매 노인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중 약 10%가 치매를 겪고 있으며, 그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치매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외출 중 길을 잃거나 집을 찾지 못해 실종 신고로 이어진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단순한 실종 사건을 넘어선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고 있다. 바로 ‘지문 사전 등록제’와 ‘배회 감지 문자 서비스’ 같은 제도 덕분이다. 휴대전화로 도착하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때로는 생명을 구하고, 가족의 눈물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는 치매 사회로 향해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늘어나는 치매 환자와 실종 문제 치매는 기억력과 판단력을 서서히 잃어버리게 만드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에서는 환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치매 환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단순한 질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매 환자의 상당수는 ‘배회 증상’을 보인다. 익숙한 공간을 잊고 낯선 길로 들어서거나, 갑자기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경찰청에 접수되는 치매 노인 실종 신고는 연간 1만 건을 웃돈다. 이는 하루 평균 30명이 사라지는 셈이다. 발견까지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도는 커진다. 노인은 체력이 약해 장시간 노숙하면 탈수나 저체온증으로 이어지기 쉽고, 도로에서 사고를 당할 위험도 크다. 실제로 실종 이후 24시간 이내에 발견하지 못하면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족에게 치매 실종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생사를 가르는 긴급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가족들의 생활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치매 노인의 실종은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돌봄을 맡은 가족 전체의 삶을 뒤흔든다. 실종이 반복되면 ...

인공지능의 발전,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까?

인공지능(AI)의 발전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인류 사회 전반을 흔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AI는 바둑 기사와 같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넘어, 의사·변호사·교사·언론인 등 지식 노동자들의 영역까지 빠르게 파고들었다. 자율주행차, 로봇 상담사, 자동 기사 작성 프로그램처럼 과거에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것들이 이미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AI가 만들어내는 편리함 뒤에는 불안감도 공존한다. 과연 AI는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까, 아니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까. 기술 발전이 불러올 노동 시장의 미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1. 자동화가 가져올 직업 구조의 변화 AI가 노동 시장에 미치는 첫 번째 영향은 자동화를 통한 일자리 구조의 재편이다. 이미 제조업 현장에서는 기계가 단순 반복 노동을 대체한 지 오래다. 그러나 최근의 AI는 단순한 생산 공정을 넘어 사무·분석·관리 영역까지 진입하고 있다. 회계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장부를 정리하고, 챗봇이 고객 상담을 처리하며, 알고리즘이 뉴스 기사를 작성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미국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존재하는 직업 중 약 50%가 부분적으로 자동화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전체 일자리의 절반 가까이가 AI의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특히 위험에 노출된 직종은 단순 반복성이 높은 업무다. 콜센터 직원, 데이터 입력원, 물류·배송 인력 등은 AI와 로봇의 도입으로 빠르게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창의력·감성·인간적 상호작용이 중요한 직종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가, 심리상담사, 돌봄 서비스 종사자, 전략 기획자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여기서도 ‘안전하다’는 표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예컨대 그림을 그리는 AI 프로그램은 이미 인간 예술가와 경쟁할 수 있을 만큼의 작품을 내놓고 있고, 챗봇은 상담사 역할을 대신하며 실제 정신 건강 분야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결...

강릉 가뭄 사태가 남긴 교훈, 물 관리 새로운 대책 필요

강릉을 비롯한 강원 동해안 지역의 가뭄은 올해 또다시 극단적 위기를 불러왔다.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제한급수와 급수차 동원에 재난 사태까지 선포된 상황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가뭄은 불가항력적이지만, 반복된 피해와 관리 실패는 명백한 인재에 가깝다. 이번 사태는 물이 인간 생존의 최전선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우며, 미래 세대를 위한 수자원 관리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1. 물 부족은 예견된 재난이었다 우리나라는 동고서저의 산악 지형 탓에 하상계수가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다. 이는 곧 강수량의 변동 폭이 커서 가뭄과 홍수가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뜻이다. 올해 강릉이 겪은 위기도 특별한 일이 아니라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현상이었다. 문제는 이를 관리할 제도적 준비가 부족했다는 데 있다. 댐과 저수지 같은 인공 구조물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지연되었고, 예산과 행정 의사결정 과정도 더뎠다. 정부가 계획한 14개 신규 댐 건설이 지역 반대에 밀려 9곳으로 축소된 것은 단기적 반발을 의식한 결정일 수 있으나,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물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강수량 부족 문제가 아니라 준비 부족이 불러온 총체적 위기였다. 가뭄이 재난으로 확대되지 않으려면 ‘예상된 위험에 대한 지속적 대비’가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 2. 성공 사례에서 배우는 교훈 강릉과 가까운 속초는 같은 조건에도 올해 큰 위기를 피했다. 속초는 20여 년 전부터 지하댐을 건설해 비상 수자원을 확보하고, 지하수 개발과 수도관 정비, 정수장 현대화 등을 통해 유수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충남과 충북도 각각 보령댐 공급망 확충, 지천댐 건설, 대형 저수지 정비 등을 통해 물 부족 사태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이 사례들은 한결같이 ‘장기적 계획과 꾸준한 투자’가 위기를 막았음을 보여준다. 물 관리는 단기간의 임기응변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속초가 가뭄을...

가을 귀를 여는 법 귀뚜라미가 들려주는 듣기의 미학

한여름의 매미 울음이 점점 잦아들면 초저녁에는 풀벌레가, 깊은 밤에는 귀뚜라미가 우리 곁을 채운다. 소리는 계절을 알리는 신호이자 마음의 풍경을 바꾸는 매개다. 귀뚜라미 소리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귀가 열리고 평소 놓치던 소소한 감정들이 비로소 들려온다. 이 글은 귀로 듣는 행위가 단순한 감각 수용을 넘어 인식과 공감의 출발점이 되는 과정을 세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살피고 마지막에 실천적 제언으로 마무리한다. 1 듣기는 인식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눈과 귀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인다. 시각 정보가 눈에 보이는 사실을 제공한다면 청각은 사건의 맥락과 정서를 먼저 전한다. 누군가가 “거기 한 번 가보자”라고 말하면 시각적 이미지 이전에 그 제안의 감정적 뉘앙스가 귀를 통해 포착된다. 사람의 목소리 주파수는 300~800Hz 사이에서 가장 편안하게 들린다. 같은 말이라도 음색과 말투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날카로운 고음은 방어를 불러오고 낮고 안정적인 저음은 집중을 유발한다. 그래서 설득과 공감에서 ‘먼저 귀를 사로잡는 기술’은 종종 눈으로 보여주는 기법보다 강력하다. 정치 연설, 고객 접대, 면접 등에서 목소리와 말투가 곧 신뢰와 태도의 첫인상으로 작용하는 이유다. 2 귀뚜라미의 울음이 일깨우는 마음의 귀 귀뚜라미 울음은 단순한 자연 소리가 아니다. 고려 시대 궁녀들이 귀뚜라미 소리를 길렀다는 기록은 그 소리가 외로움과 향수를 달래는 위로의 기능을 했음을 증명한다. 초가을 풀숲에서 울던 귀뚜라미가 점차 집 안으로 다가오는 현상은 기온 변화에 따른 생물학적 반응이지만, 인간은 그것을 계절의 정서로 해석했다. 맑고 낮은 울림은 듣는 이를 안정시키고 마음의 여백을 만든다. 마음의 귀가 열리면 사소한 소리들—낙엽 스치는 음, 논두렁 농부의 외침, 시장 상인의 목소리—까지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귀뚜라미 소리는 우리를 ‘듣는 존재’로 돌려놓는다. 3 잘 듣는다는 것의 사회적 효과 타인의 사정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면 오해와 갈등이 생긴다. 친구가 커피값...

AI가 함께 만드는 합주의 시대가 온다

합주에서 나오는 울림은 단일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기타 한 대의 독주는 매력적이지만 여러 악기가 조화를 이룰 때 얻어지는 화음과 깊이는 비교할 수 없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동일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하나의 거대 모델이 모든 문제를 풀려 하기보다 여러 전문 AI가 역할을 분담하고 협업하는 다중 에이전트 방식이 부상하고 있다. 이 흐름은 단순한 기술적 진화가 아니라 신뢰성 설명가능성 책임성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응답하는 구조적 전환이다. 본 칼럼은 다중 에이전트의 개념과 장점 적용 사례와 한계 마지막으로 정책과 윤리적 과제를 차례로 살펴본다. 다중 에이전트의 구조와 핵심 장점 다중 에이전트 방식은 여러 AI가 오케스트라의 악기처럼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아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패러다임이다. 한 에이전트는 자료 수집과 정리, 다른 에이전트는 가설 생성, 또 다른 하나는 비판적 검토와 팩트체크를 맡는다. 이렇게 역할을 분할하면 각 에이전트는 자신에게 적합한 목적에 최적화된 모델로 구성될 수 있고 복잡한 문제는 모듈화된 흐름으로 처리된다. 장점은 명확하다. 첫째 효율성 향상이다. 전문화된 에이전트는 특정 업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 둘째 오류 억제다. 서로 다른 관점의 에이전트가 상호 검증하면 잘못된 결론이 걸러진다. 셋째 설명 가능성이다. 토론 과정과 의사결정 로그가 남기 때문에 인간 사용자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하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의료나 금융처럼 실수 비용이 큰 분야에서 이점은 곧바로 신뢰 확대로 연결된다. 현실 적용 사례와 실전적 효과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의료 진단 사례는 이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섯 개의 에이전트가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고난도 사례를 평가한 결과 85퍼센트 이상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동일한 사례에서 인간 평균 정확도보다 훨씬 높은 성과다. 중요한 점은 이 결과가 개별 모델의 비약적 개선이 아니라 에이전트 간 조율, 즉 오케스트레이션의 성과였다는 사실...

립스틱 지수에서 디지털 지수로 경기 심리를 읽다

레너드 로더 에스티로더 명예회장이 남긴 립스틱 지수라는 개념은 통속적이면서도 통찰적이다. 불황기에 소비자들이 값비싼 사치품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립스틱을 사는 행동 양식에서 출발한 이론은 경제심리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경제는 수치와 통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불안과 희망이 소비로 표출되고 그 미세한 신호가 때로는 거대한 흐름의 전조가 되기도 한다. 다만 립스틱 지수처럼 간단한 민간 지표는 시대적 맥락과 돌발 변수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본 칼럼은 민간 지표의 의미와 한계, 공식 지표와의 관계,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등장할 새로운 심리지수의 방향을 세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살핀다. 민간 지표의 가치와 한계 립스틱 지수나 헴라인 지수 같은 민간 지표는 사람들의 삶 속 관찰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공식 통계가 나오기 전 소비자 심리를 먼저 포착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예컨대 특정 품목의 판매량 증감이나 일상적 행동의 변화는 소비자의 가처분소득과 불안 수준을 반영할 수 있다. 이러한 지표는 빠르게 현장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석의 오류에 취약하다. 사회적 규범 변화 기술 혁신 같은 구조적 변수가 개입하면 전통적 상관관계는 깨진다. 립스틱의 예를 보면 팬데믹 기간 마스크 착용이 확산되자 립스틱 수요가 급감했다. 즉 동일한 경기상황이라도 사회적 조건이 달라지면 행동 패턴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간 지표는 맥락과 보완지표를 함께 고려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신호로 작동한다. 공식 지표와 민간 지표의 공존 전략 정책 결정과 시장 예측에서 공식 통계는 여전히 중심적이다. GDP, 실업률, 소비자물가, 수출입 지표 등은 경제 상태를 구조적으로 진단하는 데 필수적이다. 다만 공식 지표는 시차가 존재하고 표본과 조사 방식의 한계가 있다. 이 점에서 민간 지표는 보완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지수와 기업경기실사지수는 설문을 통해 주관적 체감도를 측정한다. 여기에 립스...

이주노동자 사회 통합과 인권의 문제 다시 묻다

스위스 극작가 막스 프리쉬의 말처럼 우리는 종종 노동력만을 부른다 노동자가 왔을 때 비로소 사람이 마주한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한국 사회가 급속한 산업화와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의존하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우리 부모 세대가 독일로 떠나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던 역사를 반추하면 오늘의 이주노동자 문제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반복되는 인권 침해와 잇단 사고는 제도적 보호와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충분치 않음을 가리킨다. 이번 칼럼은 이주노동자 문제의 구조적 배경 노동권과 인권의 현주소 그리고 지속가능한 포용 전략을 세 갈래로 분석하고 결론적으로 정책적 제언을 제시한다. 1 구조적 필요와 현실의 간극 저출생과 고령화로 노동 인구가 급감하는 한국은 이미 많은 산업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제조업 조선업 건설업 농축산업은 물론 서비스 및 돌봄 분야까지 다양한 직종에서 이주노동자의 역할이 확대되었다. 이들은 국내인이 기피하는 업무를 맡아 국가적 생산성을 지탱한다. 반면 제도적 장치와 실제 처우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고용허가제나 산업연수생 제도 등 외형적 프레임이 있지만 노동권 보장 안전 교육 주거 복지 접근성 등 기본적 생활 여건은 여전히 취약하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은 단기 인력공급의 편리함 뒤에 숨어 있는 인권 비용을 초래한다. 단순히 외국 인력을 유치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체계적 관리와 장기적 사회통합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2 인권과 노동권의 실제적 침해 사례들 최근 전남 나주 공장의 조롱 영상과 경북 구미의 폭염 사망사건은 충격을 넘어 사회적 각성을 요구한다. 현장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와 안전 무시는 개별 가해자의 문제를 넘어서 고용주 감독 소홀 행정 감독체계의 허점 등을 드러낸다. 다수 이주노동자가 휴게권과 적정 근로시간 보장 임금 체불 의료 접근 제한 언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권리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고는 반복된다. 특히 산업재해 은...

머리가 좋다의 재정의 학습력에서 삶의 지능으로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한다는 평가는 부모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겉보기에는 칭찬 같지만 실상은 기대와 좌절이 섞인 말이다. 머리가 좋다는 말의 의미를 단순 암기력이나 시험 점수로 환원하면 오해가 쌓이기 쉽다. 진정한 지능은 정보 처리 속도나 기억의 양 이상을 포괄한다. 상황을 읽고 사람을 이해하며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해내는 능력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이 칼럼은 머리가 좋음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지 사회적 역량과 뇌 지구력의 관점에서 살피고 실천 가능한 교육적 대안을 제시한다. 머리 좋음의 다면성 지능과 사회적 역량 전통적으로 머리 좋음을 설명할 때 IQ와 기억력을 언급한다. 분명 이 지표들은 학습 초기 단계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요구되는 역량은 훨씬 복합적이다. 문제 인식과 통찰력, 정보의 비판적 수용 능력, 창의적 발상과 메타인지 같은 능력이 결합될 때 실질적 해결력이 발현된다. 여기에 더해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며 협업하는 능력, 즉 사회 정서적 역량이 없다면 개인의 탁월함은 조직적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리더십은 폭넓은 시야와 소통의 능력이 결합된 대표적 사례다. 외형적 성적으로만 평가되던 시대는 끝났다. 학교와 기업 모두 이제는 사람을 다면적으로 평가하고 훈련해야 한다. 노력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동기와 환경이다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머리가 나쁘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노력의 결여는 동기 부족일 수도 있고 학습 환경의 문제일 수 있다. 예컨대 과도한 성적 경쟁이나 부모의 과도한 기대는 역효과를 낳아 학습 의욕을 꺾는다. 또 학습자 자신이 목표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노력이 나오기 어렵다. 따라서 학습 설계는 외적인 보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목표 설정, 실패 허용의 학습 문화, 성취 경험을 통한 자기효능감 강화가 필요하다. 교사와 부모는 평가의 잣대를 점수에서 과정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과정에서의 작은 성취를 인정받는 경험은 장기적 노력의 기초가 된다. 뇌 지구...

치매 예방 속설을 넘어 과학으로 접근할 때다

바둑이나 고스톱 같은 두뇌 게임을 자주 두면 치매를 예방한다는 말은 오래된 속설이다. 누구나 따라 하기 쉽고 들으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의료 전문가들은 이를 과도하게 믿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치매는 뇌 신경세포의 구조적 손상으로 발생하는 복합 질환으로 단순한 취미 활동만으로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취미 활동은 삶의 질을 높이고 인지 자극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칼럼은 치매의 기전과 증상, 두뇌 활동의 한계와 역할, 그리고 실효성 있는 예방 전략을 세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과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치매의 본질과 증상 이해하기 치매는 기억력 저하로 대표되지만 그 본질은 신경세포 내 이상 단백질의 축적과 신경망의 붕괴다. 대표적 병리 기전은 베타 아밀로이드의 축적으로 신경섬유 다발을 형성하고 콜린계 신경전달물질의 기능을 손상시키는 과정이다. 임상적으로는 초기의 시간 인지 장애, 중기의 장소 인지 장애, 말기의 사람 인지 장애로 이어지는 전형적 경과를 보인다. 초기에는 최근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아 강의 내용이나 약속을 잊는 일이 잦아지고, 중기에는 익숙한 길에서도 길을 잃거나 장소를 식별하지 못하며, 말기에는 가까운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현재 시판되는 콜린분해효소 억제제는 중증 진행 후에 제한적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있어 근본적 해결책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조기 진단과 생활습관 개선이 핵심적이다. 바둑 고스톱은 보조적 자극일 뿐 근본 치료는 아니다 바둑과 고스톱은 인지 자극을 제공하고 사회적 교류를 촉진하기 때문에 뇌 활동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오랜 습관으로 익숙해진 활동은 치매 초기도에도 비교적 잘 유지되는 경향이 있어 관찰상 치매 환자가 여전히 바둑을 둘 수 있다는 사례를 흔히 접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학습된 절차 기억이 상대적으로 보존되는 인지 영역의 특성 때문이지 병리적 진행을 멈추게 하는 증거는 아니다. 역학적 연구는 다양한 인지활동이 치매 위험을 낮추는 ...

한복을 일상으로 돌려놓는 문화정책의 숙제

추석이 다가오면 한복을 꺼내 입던 풍경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펼치는 추석 한복 캠페인은 과거의 관습을 단순히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한복의 사회적 의미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다. 한복 교환 장터와 리폼 워크숍 전통 문양 체험 등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한복을 소비 대상이자 전시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생활문화로 확산하려는 전략은 긍정적이다. 다만 정책적 효과를 생활로 연결하려면 기획 이상의 후속 조치와 현실적인 과제가 남아 있다. 본 칼럼은 이번 캠페인의 의의와 한계 향후 과제를 세 가지 논점으로 짚어본다. 한복 캠페인의 의미와 문화적 효과 첫째 이번 캠페인은 전통 복식을 보존하는 수준을 넘어 문화적 자원을 재발견하는 공공정책의 한 사례다. 한복은 단순한 의상 그 이상으로 신분과 계절 공동체적 의례의 상징을 담은 복합적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한복을 일상으로 불러오는 정책은 문화 자산의 활성화로 이어질 잠재력이 크다. 한복 교환 장터는 의복의 순환경제를 촉진하고 리폼 프로그램은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보여준다. 온라인 사진 공모전과 외국인 대상 행사로 캠페인을 확장한 점도 한복을 내수 중심의 전통상품에서 관광 콘텐츠와 문화 수출로 연결하려는 복합적 전략을 엿보게 한다. 공공 마스코트의 한복 착용이나 해외 전광판 영상 송출은 상징적이지만 문화의 가시성을 높여 대중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다. 일상화의 장애: 착용의 불편과 사회적 인프라 둘째 한복을 일상화하려면 지금보다 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복은 형태와 소재가 다양하고 착용법도 복잡해 일반 대중이 일상복처럼 소화하기 어렵다는 점이 존재한다. 체험 행사에서 한복을 입어보는 경험은 중요하지만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일시적 이벤트에 그칠 우려가 크다. 이를 극복하려면 편안하고 유지 관리가 쉬운 생활 한복의 보급, 한복 대여와 수선 인프라의 확충, 공공장소에서의 보관과 탈의 공간 마련 등 물리적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직장과 학교에서 한복 착용을...

혐중 시위와 표현의 자유 그 너머를 묻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촉발된 반중 정서는 단순한 감정표출을 넘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젊은 세대의 낮은 중국 호감도는 한때 우호적이었던 문화 교류와 경제 협력의 기반을 흔든다. 명동과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혐중 시위는 관광업계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외교적 긴장을 부추긴다. 동시에 표현의 자유와 증오 발언을 구분해야 한다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 칼럼은 세대와 여론의 실상, 관광과 경제적 파급, 제도적 대응의 가능성을 세 갈래로 나누어 살피고 결론적으로 사회적 해법을 제안한다. 세대별 공감의 분열과 감정의 온도차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18~29세 집단의 중국 호감도가 16.6점이라는 수치는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세대적 경험의 누적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영상과 게시물은 편향된 사건을 증폭시키고, 집단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젊은 세대는 정보 소비 방식이 다르고 사건을 실시간으로 소비하며 정서적 반응을 공유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중장년층은 상대적으로 장기간의 경제 교류와 문화 접촉을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에 평가의 기준이 달라진다. 세대 간 인식 차이는 단순한 세대 갈등을 넘어 국가 정체성과 외교 감수성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 갈등을 해소하려면 왜 젊은층이 이렇게 반중 감정을 갖게 됐는지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단발적 비난이나 일시적 정치적 프레이밍으로 설명하기엔 복합적 요인이 많다. 관광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실질적 피해 명동은 한국 관광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혐중 시위는 곧장 관광 수입 감소와 중소상인의 생계 문제로 연결된다. 관광객의 경험은 입소문으로 확산되며 국가 브랜드 이미지에 장기적 영향을 끼친다. 단기적 피해는 숙박 음식 소매업에서 나타나지만 장기적 손상은 재방문율 하락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더욱이 대학가와 상권에서 벌어진 물리적 충돌은 안전 문제를 야기하고, 외국인 관광객이 불안감을 느끼면 대체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관광 산업은 저비용 고...

하루 7∼8시간 규칙적 수면이 건강을 지킨다

수면은 호흡 음식 물과 함께 인간의 기본 리듬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충분하고 질 좋은 수면은 조직 회복과 면역 기능 증진 기억과 학습의 정리 감정 조절 등 다양한 생리·인지 기능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반대로 수면 시간이 지나치게 짧거나 길고 수면 시간이 들쑥날쑥 불규칙하면 심혈관계 질환과 조기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 한양대병원 연구팀이 약 1만 명의 성인을 평균 15.5년 추적한 대규모 코호트 분석은 수면 시간과 규칙성의 결합이 사망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성별 연령별로 세밀하게 보여주며 개인 맞춤형 수면 관리의 필요성을 다시금 부각시켰다. 연구 개요와 핵심 결과 이번 연구는 경기도 안성·안산 역학연구에 등록된 40세에서 69세 성인 약 9천641명을 대상으로 평균 15.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일일 수면 시간을 7∼8시간 미만 적정범위 7∼8시간 미만·8시간 이상 등으로 나누고 수면의 규칙성을 추가 지표로 삼아 사망 위험을 비교했다. 그 결과 수면 시간만으로도 장단점이 존재했지만 규칙성의 여부가 결합될 때 위험도 변화가 뚜렷해졌다. 구체적으로 하루 8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수면을 취한 집단은 적정 수면 집단에 비해 사망 위험이 평균 27퍼센트 높았고, 7시간 미만 단기 수면도 사망 위험을 상승시키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불규칙한 수면 패턴은 수면 시간의 유해성을 증폭시켰다. 성별로 보면 남성은 짧은 수면과 불규칙성이 결합될 때 사망 위험이 최대 38퍼센트까지 증가한 반면 여성은 장시간 수면과 불규칙한 패턴이 결합될 경우 사망 위험이 무려 78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연령대별 분석에서는 중년층이 수면 부족에 상대적으로 민감했고 노년층은 과도한 수면의 부작용에 더 취약한 양상이 관찰되었다. 연구진은 수면 부족 과도한 수면 수면의 질 저하 및 수면무호흡증 같은 수면장애가 심혈관계에 악영향을 미쳐 결국 사망 위험을 높이는 기전으로 설명했다. 규칙적 수면의 중요성과 성별·연령 차이 해석 왜 규칙성이...

남성 그루밍 시대 외모 가꾸기

인간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치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오히려 이례적인 현상이다. 대부분 동물 세계에서는 암컷이 짝짓기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수컷은 화려한 외모와 과시적 행동으로 암컷의 선택을 받으려 한다. 공작 수컷의 화려한 꼬리나 사슴의 웅장한 뿔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인류 사회에서 여성의 치장이 강조된 것은 경제와 권력 구조의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 특수한 문화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성 중심에서 남성 중심으로 이동한 권력의 역사 원시 사회에서 여성은 열매 채집과 육아를 담당하면서 공동체 내 권력을 가졌다. 가끔 사냥에 성공하는 남성보다 여성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짝 선택권도 여성에게 있었다. 이 시기 여성은 치장할 필요가 크지 않았다. 모계 사회가 주류였고, 남성은 단순히 DNA를 전달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농사에는 근육과 힘이 필요했고, 토지와 생산 수단을 장악한 남성이 점차 권력을 쥐게 되었다. 정착 생활과 함께 일부일처제 가족 제도가 정착하면서 가부장제가 사회 질서의 기반이 됐다. 근대 이후 산업혁명과 기술 발전은 힘보다 지식과 기술이 더 중요한 시대를 열었다. 근육 중심의 남성 권력은 약화됐고, 여성은 투표권과 경제 참여를 확대하면서 권리의 지평을 넓혔다. 더 이상 여성은 생존을 위해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고, 혼인율 저하와 이혼율 증가는 이런 사회적 변화의 자연스러운 귀결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남성이 외모 가꾸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급성장하는 남성 화장품 시장 최근 남성들이 외모를 가꾸는 현상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거대한 산업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한국은 남성 화장품 소비 규모와 성장 속도에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연간 스킨케어 소비액은 세계 1위를 기록했으며, 이미 2010년대부터 ...

물의 안보학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물 전쟁의 시대

우리 몸의 70%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가 생명체가 존재하는 유일한 행성으로 확인된 것도 물 덕분이다. 인류는 외계 생명체 가능성을 탐사할 때도 먼저 물의 흔적부터 찾는다. 물 없이는 생명도 없다. 그래서 고대부터 치수는 국가 존망의 조건이었고, 농업과 공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은 물의 공급 여부에 달려왔다. 그러나 지구의 물 대부분은 바닷물이고, 인류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양은 지구 전체의 0.007%에 불과하다. 인구 증가와 산업화가 겹치면서 만성적인 물 부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한반도의 물 안보 취약성과 대응 물 전쟁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반도 역시 물 안보에서 자유롭지 않다. 북한은 1980년대 금강산댐을 건설했는데, 남한에서는 이 댐이 붕괴하거나 의도적으로 수공에 사용될 경우 수도권이 직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평화의 댐을 건설해 대비했다. 당시 정치적 논란이 있었으나, 후속 연구에서 금강산댐 붕괴 시 수도권 위험이 확인되자 결국 저수 용량을 대폭 늘려 안보적 효용성을 확보했다. 한국은 강수량이 계절에 따라 극심하게 변하는 나라다. 강물 수량 변동을 나타내는 하상계수가 평균 300으로, 선진국 주요 강의 10배에 가깝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강바닥이 드러나고, 장마철에는 홍수가 반복됐다. 한강의 경우 하상계수가 390에 달했지만, 여러 댐과 보를 통해 90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그 결과 서울의 반복된 홍수 피해는 줄었고, 가뭄에도 일정한 수량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섬진강 등 일부 하천은 여전히 조절 능력이 부족해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 국제 갈등의 뇌관으로 떠오른 물 전쟁 지구 표면의 71%가 물이지만, 인간이 활용 가능한 담수는 극히 적다. 그마저도 국가 간 공유가 필요해지면서 물은 이제 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인도, 파키스...

크랩 멘탈리티 게심보가 공동체를 잠식할 때

게들이 바구니 속에서 서로를 끌어당겨 아무도 탈출하지 못하게 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다. 이를 일컫는 크랩 멘탈리티는 개인의 성취를 질투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집단적 저항으로 나타난다. 누군가가 앞서가면 그를 끌어내리려는 행동은 개인의 불안 해소에는 일시적 도움이 될지 몰라도 조직과 사회 전체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다. 현대 사회에서 이 현상은 단순한 심리적 문제를 넘어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분열을 초래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돼야 한다. 크랩 멘탈리티의 심리적 기전과 사회적 촉진 요인 크랩 멘탈리티의 핵심은 상대적 박탈감과 비교 의식이다. 사람은 타인의 성공을 자신의 실패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그로 인해 시기와 질투가 발생한다. 여기에 사회적 불평등이나 기회의 불균형이 겹치면 박탈감은 증폭된다. 현대적 촉매로는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 타인의 성취와 소비가 실시간으로 노출되면서 비교의 기준은 언제나 높아졌고, 자신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하락했다는 인식이 쉽게 형성된다. 또한 조직 내 불투명한 승진 시스템이나 불공정한 보상 구조가 존재할 때, 성과를 내는 구성원을 신뢰하기보다 의심하고 음해하는 문화가 퍼지기 쉽다. 조직과 공동체에 미치는 비용과 장기적 악영향 겉으로 드러나는 피해는 개인 간 갈등이지만 실질적 비용은 훨씬 크다. 성과를 내는 사람을 비방하거나 배제하는 문화는 혁신을 저해하고 인재 유출로 이어진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보다 동료의 실패를 바라는 환경에서는 자발적 협력과 지식 공유가 멈춘다. 기업 차원에서는 생산성 저하와 창의성 결핍, 인재 확보 실패로 이어지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산업 경쟁력 약화와 사회적 신뢰 상실로 연결된다. 결국 바구니 속 게들이 모두 죽는 것처럼 공동체가 하향 평준화되면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예방과 개입 전략 성과 중심의 공정한 제도 설계 크랩 멘탈리티를 막기 위한 첫걸음은 공정한 규칙과 투명한 보상 체계다. 평가 기준이 명확하고 성과가 정당하게 보상되는 ...

소풍 기피 확산, 아이들의 권리마저 빼앗기나

세월호 참사와 초등생 용변 사건은 우리 사회에 소풍 폐지론이라는 새로운 논쟁을 불러왔다. 교사의 법적 책임을 면제하는 법까지 시행됐지만, 일선 학교 현장에서 소풍과 현장체험학습을 기피하는 분위기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소풍은 단순한 야외 활동이 아니라 세대와 사회를 잇는 중요한 학습의 장이었다. 안전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의 권리와 교육적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1. 사고 이후 심화된 소풍 기피 현상 2017년 대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겪은 사건은 교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버스 안에서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진 여학생을 어쩔 수 없이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보게 한 뒤 휴게소에 내려 부모에게 인계한 일이 아동학대로 규정된 것이다. 법원은 벌금형을 선고했고, 이는 교사 사회 전반에 불신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은 세월호 참사 이후 불거진 소풍 폐지론을 더욱 가속화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교사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 차라리 소풍을 없애자"는 의견이 올라왔고, 일부 학부모는 위험 부담을 이유로 강하게 지지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학교의 소풍·견학 건수는 전년 대비 3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각 교육청이 인솔 인력 지원과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교사들의 두려움과 학부모의 불안 심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2. 소풍이 지닌 역사적·교육적 가치 오늘날 소풍이 안전 문제로 기피 대상이 되고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소풍은 아이들에게 인생의 소중한 학습장이었다. 1980년대 후반까지 한 학급의 평균 학생 수는 70명에 달했지만, 교사들은 수십 명의 학생을 인솔해 산과 들로 소풍을 데리고 갔다. 당시의 소풍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라 사회성·공동체 의식을 배우는 교육적 공간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가 나무 뒤에 숨어 울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

여성 징병제 논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다시 묻다

여성과 군대의 관계는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시대 진흥왕 때 도입된 원화 제도는 여성 지도자를 중심으로 젊은 인재를 선발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 살육 사건으로 제도가 폐지되며 여성의 군사적 역할은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수세기 동안 여성은 전장에서 지휘관으로 활약하기보다는 전쟁의 뒷전에서 간호와 지원을 담당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군 복무 문제는 다시금 공론의 장으로 올라왔다. 특히 병력 자원 부족이 심각해지는 지금, 여성 징병제는 단순한 논쟁거리를 넘어 국가 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1. 신라 원화에서 한국 여군 창설까지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37년, 준정과 남모라는 두 여성이 원화로 선발되어 청년들을 이끌었으나,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결국 살인 사건으로 이어졌다. 왕은 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미모와 기개를 갖춘 남성을 뽑아 화랑으로 삼았다. 이 사건은 여성 지도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체계적 장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후 한국사에서 여성은 정규군의 지휘관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6·25 전쟁은 상황을 바꿨다. 정부는 여성들의 자원 입대 요구를 받아들여 1950년 8월 여자의용군을 모집했다. 500명의 1기생은 짧은 훈련을 거쳐 곧바로 낙동강 전선 등지로 배치됐다. 그들은 총을 들고 싸우는 전투병뿐 아니라 간호, 심리전,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군의 공백을 메웠다. 9월 6일은 훗날 여군 창설 기념일로 제정되었고, 이는 한국군 역사에서 여성의 역할이 제도적으로 인정된 첫 사례로 남았다. 이후 여성 군인은 수적으로는 소수였지만 지속적으로 존재감을 넓혔다. 그러나 여전히 지원군이나 비전투병과 중심의 역할이 많았다. 본격적인 여성 징병제 논의는 병력 절벽이 눈앞으로 다가온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다. 2. 여성 징병제 논의의...

AI 시대, 외국어 전공의 몰락과 부활의 길

1989년 1월 1일, 한국 사회는 하나의 분수령을 맞았다. 바로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은 일부 부유층과 50세 이상 연령대에게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은행에 거액의 보증금을 예치하고,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에 들러 반공 서약을 해야만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누구나 국경을 넘어 세계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곧 외국어 전공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듯 보였다. 외국어 전공, 개도국 시대의 황금 티켓 고도성장과 수출 중심 경제는 곧 외국어 능력을 국가 경쟁력과 동일시했다. 영어, 불어, 독어는 소위 ‘영불독’으로 불리며 대학가의 최고 인기 전공 반열에 올랐다. 이들 전공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취업 보증수표였다. 외국어를 잘하면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문이 활짝 열렸고, 국제 무역과 외교의 최전선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법대와 상과대가 안정적인 진로를 보장했다면, 외국어 전공은 ‘세계로 향하는 티켓’이었다. 1990년대 초반, 한국의 수출 시장이 공산권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중국어, 러시아어, 심지어 베트남어 같은 동남아 언어까지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비인기 소수어로 취급되던 언어들이 갑자기 각광받으며, 어학 전공자들은 말 그대로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세계화와 AI가 불러온 위기 그러나 세계화의 진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어 전공자들에게 위기를 안겨주었다. 외국 인력이 대거 유입되면서 언어 장벽은 점점 낮아졌다. 특히 소수어 전공자들은 개도국 출신 이주민들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희소가치가 급속히 떨어졌다. 한때 상종가를 치던 언어 능력이 더 이상 특별한 경쟁력이 되지 못한 것이다. 불어와 독어는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고등학생들이 제2외국어로 기피하면서 교사 임용 시장부터 막혔고, 대학 전공자들은 교단 진출의 길이 끊겼다. 최근에는 주요 국립대에서조차 불어, 독어, 중국어 학과를 통합하거나...

가뭄보다 더 무서운 건 무능한 정치다

가뭄은 예나 지금이나 민생을 뒤흔드는 가장 큰 재앙 중 하나다. 하늘이 내리는 비 한 방울에 농사가 좌우되던 시절 비가 오지 않으면 삶이 무너졌고 공동체는 언제든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그래서 왕은 하늘에 기도했고 백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우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역사를 들여다보면 기우제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과 정치 그리고 책임의 문제였다. 오늘날 강릉의 물 부족 사태를 마주하며 우리는 기우제의 본질과 현대적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된다. 하늘에 비는 빌고 땅의 민심을 다스리다 고려 충숙왕 16년 1329년 극심한 가뭄이 들자 왕은 무격 즉 무당과 박수를 대거 동원해 폭무기우(曝巫祈雨)를 열었다. 무당들을 뙤약볕 아래 세워두고 비가 내릴 때까지 춤과 기도를 강요한 것이다. 엿새를 버티지 못하고 도망친 이들은 다시 붙잡혀 가혹한 형벌을 당했다. 당시 사람들은 접신한 무당에게 고통을 주면 하늘이 불쌍히 여겨 비를 내린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비가 오면 왕의 지극한 정성 덕분이라 선전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무당의 무능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었다. 결국 기우제는 백성을 위로하기보다 왕권을 지탱하는 도구였다. 조선은 이를 한 단계 더 제도화했다. 왕은 종묘와 사직 원구단에서 정례 기우제를 지냈고 가뭄이 닥치면 즉시 의례를 열었다. 가뭄은 왕의 덕이 부족해 하늘이 벌을 내린 결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유교 국가라 무당을 배척했음에도 책임을 떠넘길 대상으로 무당은 여전히 기우제 현장에 불려 나왔다. 천자라 불린 왕조조차 하늘에 굽실거리며 민심을 다독이는 상황에서 무당은 희생양이자 권력 유지의 장치였던 셈이다. 재해보다 더 큰 재앙, 무책임한 권력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지만 국가의 대응은 선택의 문제다. 조선왕조 519년 동안 가뭄이 기록된 사례는 419회로 1.2년에 한 번꼴로 찾아온 셈이다. ...